[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민정] 2층 사무실 창문을 열면 3m거리에 오동나무 2그루가 나란히 서있다. 어느 날부터인지 직박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사이에 둥지를 틀 더니 며칠째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새를 처음 발견하고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야생의 본능으로 피할 만도 한데 경계심을 갖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 후로 출근을 하면 맨 먼저 새에게로 다가가 간밤에 별일 없었는지 확인을 했다. 괜히 가족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가끔 검은 등 뻐꾸기가 배회하며 직박구리를 살피며 유영(游泳)을 하다가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새끼를 돌보거나 건사하지 못한다. 다른 새들이 알을 품고 있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회만 노리던 눈치 빠른 뻐꾸기는 잽싸게 달려들어 알 하나를 깨먹거나 굴려 떨어뜨리고 제 것 하나를 재빨리 낳고 줄행랑을 친다. 이렇게 이 둥지 저 둥지를 배회하면서 사방 알을 낳는 탁란( 托卵)조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뻐꾸기 습성과 오늘 날, 탁아( 托兒)하는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낳아 조부모에게 맡겨 놓고 자신을 생활을 찾아가는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에 이른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창가로 가서 살펴보기를 며칠, 폭염 속에서도 여전히 요동하지 않은 채, 열흘 만에 새끼가 태어났다. 털도 없는 날 몸, 알몸 그 자체의 모습은 너무 안쓰러웠다. 여름이더라도 새벽 공기에 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며칠 지나지 않아 솜털이 제법 자라났다. 가까이에서 새의 탄생과 성장, 습성을 바라보면서 잔잔한 평화와 자유를 맛보며 무언의 대화를 하며 교감을 나누었다. 비가 내리면 넓은 오동 나뭇잎사귀를 지붕삼아 비를 피하고, 바람이 불면 날갯죽지를 접어 새끼들을 보호했다. 공장에 소음도 마다않고 미동도 하지 않은 어미 새는 새끼에게 먹일 양식을 구하러 나갈 때야 움직였다. 하얀 솜덩이 새끼는 어미를 기다리며 짧은 목을 빼고 삑삑거렸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새 와의 만남은 여름이 다가도록 인연을 이어갔다. 새끼가 점점 자라서 둥지 안을 차지하면서 작은 둥지가 위태로워 보였다.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는 제법 꽁지를 내밀고 날갯짓 연습에 한창이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그날도 커피 한잔을 타서 직박구리 가족을 만나러 창가로 갔다. 그런데 '아뿔사' 무서운 일이 벌이지고 있었다. 먹구렁이 한 마리가 새 둥지를 향하여 슬금슬금 기어오르더니 어미새를 공격하기 시작 했다. 구렁이의 습격에 놀란 어미새가 '빡빡빡' 비명과 함께 날갯짓을 하며 온몸을 다해 저항했으나 순식간에 새끼를 삼켜버린 구렁이는 이번에는 어미 새를 향해 몸을 비틀었다. 어미 새는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새끼를 모조리 삼켜버린 구렁이는 나무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보고 난 후 그날 밤 꿈에 먹구렁이 떼가 나타나 괴롭힘을 당해야만했다. 그 후 어미 새는 어디로 갔는지 며칠 째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생태계에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먹이사슬은 피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생태계와 인간의 세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승자독식이 만연한 사회다. 며칠만 기다리면 날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아직도 그 날의 변고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오동 나뭇가지 위에는 직박구리 가족의 빈 둥지만이 쓸쓸하게 남아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기억될 2018년 여름은 이렇게 끝이 나고야 말았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