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일 시인의 시의 플랫폼] 박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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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한 순간 / 박상순

텅 빈 버스가 굴러왔다

새가 내렸다
고양이가 내렸다
오토바이를 탄 피자 배달원이 내렸고
15톤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텅 빈 버스가 내 손바닥 안으로 굴러왔다

나도 내렸다
울고 있던 내 돌들도 모두 내렸다

텅 빈 버스가 굴러왔다

단풍잎 하나
초침이 돌고 있는 내 눈 속에
떨어지고 있었다

 

최호일 시인<br>
최호일 시인

계절은 일단, 텅 빈 버스로 우리 앞에 멈춰선다. 처음엔 계절의 이름만을 앞세우고 나타나지만 이내 무엇인가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시인은 그것을 꼭 필요에 의해서 발견하고 호명한다. 새, 고양이, 피자, 트럭. 드디어 '나'조차도 가을 속에서 발견한다. 나도, 울고 있던 돌도 가을에 도착한 것이다. '내 안에서 울고 있던 돌'은 삶의 무거운 짐인 듯하다. 그것조차 짊어진 채 우리는 가을을 맞이하는 것이다. 텅 빈 버스의 공간을 가을보다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버스가 가을보다 크고 넓다니! 자각하는 순간 시간이 우리 앞에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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