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EBS 스페이스 공감 홈페이지 갈무리.
EBS 스페이스 공감 홈페이지 갈무리.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순덕] 아침 산책길에 하얀 나비 한 쌍을 보았다. 나풀나풀 정답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는 길 안내를 하듯 한 점 꽃잎이 날 듯 소리 없이 곁에서 맴돌았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다 김정호의 '하얀 나비'를 흥얼거렸다.

가을이 오면 시와 음악이 감성 충만하게 익어간다. 누군가 보내준 '그리움'이란 시를 마주하며 젊어서의 그리움이 설렘이라면 나이 들어서의 그리움은 고독이라는 생각이 들 때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특별한 콘서트에 당첨이 되어 방청을 하게 되었으니 동행하자는 것이다. 엄마가 즐겨 듣는 'Donde Voy'의 멕시코 가수 티시 히노호사와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오 트리오가 그 주인공이라며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방송국에 처음 신청을 해 보았는데 당첨 문자가 왔다며 몹시 기뻐하였다.

가끔 방송을 보다 보면 대부분 딸들이 신청을 해서 가족이 함께 방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아들만 있는 나는 부러워만 했었는데 나에게도 부럽지 않은 시간이 온 것이다. 대전에 살고 있는 아들과 방송국이 있는 일산의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방송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설렘 그 자체였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먼저 와서 기다리던 아들이 손을 흔들며 환한 웃음으로 다가왔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아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시간에 맞춰 방송국까지 택시를 탔다. 방청 티켓을 수령하고 기다리는 동안 건물 내부에 있는 커피숍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인증 숏도 남겼다. 딸은 커가면서 엄마의 친구가 되고 아들은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 주는 아들이 고마웠다.

방청석과 무대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웠다. 너무 가까워서 출연자가 부담스럽겠다는 생각도 잠시. 첫 무대에 오른 티시 히노호사의 노래가 생생한 울림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며 맑은 듯 구슬픈 목소리로 애절하게 불러주는 'Donde Voy'는 한동안 즐겨보던 드라마 주제곡이기도 했다. 드라마 내용에 푹 빠져서 함께 가슴을 죄던 그 노래를 이 자리에서 라이브로 듣는다는 것에 무언지 모를 벅찬 감정이 훅 올라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애조 띤 음색으로 감성을 느끼게 해 주는 티시 히노호사의 노래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에오 트리오는 피아노와 드럼의 섬세한 연주가 방청객의 숨소리조차 삼켜버릴 듯 숨 막히게 집중을 시켰다. 한 땀 한 땀 소리를 빚어내듯 온 정성을 다해 관객에게 전달해주었다. 타악기인 드럼에서 그토록 섬세하게 다양한 소리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였다. 연주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집중하는 내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티시 히노호사의 노래를 듣기 위한 발걸음이었는데 오히려 클래식 재즈에 더 꽂히게 되었다. 작은 공간에서 뮤지션과 관객이 소통하는 현장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받고 에오 트리오라는 새로운 뮤지션을 알게 된 시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두 뮤지션의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며 점점 더 짙어지는 저 음악 색 속으로 마음이 물들어 갈 때 옆에 앉아있는 아들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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