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창석 충남 공주문화원장

청명한 초가을 날씨를 보인 9일 휴일을 맞아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청주 목련공원을 찾은 성묘객들이 벌초를 하며 묘소를 돌보고 있다. / 김용수
청명한 초가을 날씨를 보인 9일 휴일을 맞아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청주 목련공원을 찾은 성묘객들이 벌초를 하며 묘소를 돌보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기고 최창석] 올여름 더위는 유난히도 지독했다. 그런데 9월이 되니 아침, 저녁 시원한 바람이 정말로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 '깊어가는 가을밤에 낮 서른 타향에...' 등 노래 한 자락도 흥얼거리고 싶고 붉어져가는 감나무 대추나무를 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른 가을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많은 한국인들이 벌초하기 위해 조상 산소를 찾고 또 성묘를 위해 고향 산천을 오고 가는데 그로인해 고속도로가 막힌다. 아마도 고향 산소를 찾고 벌초를 위해 이동하는데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이야기를 외국인들이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요 숭조는 효의 연장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통적으로 조상 모시기를 살아있는 부모 모시듯 정성을 다했다. 집안에 사당을 세워 조상을 모시기도 했고 돌아가신 전날을 기일(忌日)로 잡아 산 사람 대하듯 차례를 지냈고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였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풍성한 결실의 계절에는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먼저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변하여 가치관과 철학도 변하고 있다. 그 근본은 아직까지 큰 흔들림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에는 차례를 지내는 것이 꼭 선산이 있고 조상이 잠들어 있는 고향 산천에서 지냈지만 세상일에 바쁜 자녀들을 배려하여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가고 역귀성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조상님이 못 찾아올지도 모르는 그곳에서도 정성들여 조상님께 예를 올리고 있다. 한 20여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유구중 교사로 보이스카웃 활동을 할 때 대원 17명을 이끌고 말레이시아 잼버리에 참가한 일이 있다. 장장 16일 간의 긴 여행이라 그 중간에 어머님 제사가 들었다. 나 혼자 17명을 인솔하는 중요한 행사고 국제적인 행사라 빠질 수도, 날짜를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집사람과 동생에게 예정대로 공주에서는 집안제사를 지내라고 이야기를 해놓고 장손이요 장남인 내가 2주기 모친 제례를 그냥 말 수 없어서 나 혼자 먼 이국 땅 싱가폴에서 제사를 지낸 적이 있다. 제수는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 2~3개요. 술은 싱가폴에서 1병에 만원 준 비싼 소주로 또 한지는 아니지만 백지에 지방을 쓰고 내 나름대로는 정성들여 먼 이국땅에서 제사를 지냈다.

최창석 충남 공주문화원장.

나는 내 형제, 후손들에게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님을 생각하고 그 분의 업적을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음식이나 제사의 형식은 그 다음의 일이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요즈음 한국인들도 추석 연휴에 많이 외국에 나간다. 몸은 이국에 있지만 잠깐의 시간을 내어 조상을 생각하고 간단한 음식으로 차례도 지내며 자식들에게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하는 전통이 생겼으면 한다. 우리 속담에 '조상 잘 모시고 잘못되는 집안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세상의 편의에 의해서 또 가족의 행복과 아름다운 추억을 위하여 외국 또는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명절을 지내지만 조상의 은덕을 생각하고 후손들에게 그 정신을 물려주는 집안은 결코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나의 뿌리인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조상을 받드는 숭조 정신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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