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이야기
포도 이야기
  • 중부매일
  • 승인 2018.09.1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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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일부 과수농가에서는 폭염피해를 입고 있는 가운데 영동군 매곡면의 한 시설하우스 포도재배 농가에서는 폭염을 이겨내고 당도가 높은 포도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 김용수<br>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일부 과수농가에서는 폭염피해를 입고 있는 가운데 영동군 매곡면의 한 시설하우스 포도재배 농가에서는 폭염을 이겨내고 당도가 높은 포도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경구] 며칠 동안 포도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것도 삼 년 내내 같은 집의 포도를. 아주 오래 전 마당에는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여름방학에 내내 맛있게 먹은 걸로 기억난다. 그래서 9월에는 포도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도 한창이라고 한다. 며칠 전 포도 한 상자를 받았을 때 들었다. 어릴 적 포도나무는 아버지가 심어주셨다. 대부분 마당에는 감나무나 살구나무,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우리 집에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생긴 포도나무는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가치치기를 했지만 그래도 쑥쑥 자란 포도나무는 앞마당에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일부는 기와지붕을 타고 올라갔다. 주절이 주절이 달리는 포도를 따 옆집이랑 나누어 먹거나 놀러온 사람들에게 담아 주기도 했다.

포도하면 생각나는 게 또 있다. 한 십 년 전 여름방학 논술수업을 할 때였다. 김기윤 이라는 학생이 오자마자 무언가를 내밀었다. 하얀 휴지로 돌돌 감싸 온 포도 한 송이였다. "선생님, 마당에서 농약 안 주고 기른 거예요." 그 포도를 맛있게 먹으면서 오래 전 마당에 포도나무가 떠올랐다. 가뭄에는 포도나무 옆에 구덩이를 파 한 양동이씩 물을 부어주던 일도 함께. 기윤이네 가족도 그렇게 포도를 길렀을 것 같았다. 지금도 하얀 휴지로 감싼 탐스러운 포도와 환하게 웃던 기윤이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여기에 한 명이 더 떠오르게 됐다. 바로 먼 거리에 있는 친정아버지의 포도농사를 도와주는 정미선 선생님이시다. 주말과 휴일에는 아예 포도밭에 달팽이처럼 붙어산다. 그리고 평일에도 포도밭에 왔다갔다 여자 홍길동이 따로 없다.

삼 년 계속 먹은 포도가 바로 여기 포도다. 많은 포도를 먹어봤지만 정말 맛있다. 그리고 포도 상자가 정말 꽉 찬 게 묵직하다. 포도밭 근처에 바다가 있다고 한다.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포도밭을 봤지만 멀리 바다가 보이는 포도밭 풍경이 궁금하다. 포도가 바다 바람을 먹어서 더 맛있다고 하지만 정미선 선생님의 간절한 포도사랑이 담겨서 더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정미선 선생님은 포도 가지치기를 하거나 포도를 딸 때 등 그 어떤 상황에도 콧노래가 나온다고 한다. 땀을 뚝뚝 흘리면서 가끔은 끙끙 앓기도 하지만 포도 잎사귀와 포도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한다. 이런 마음을 누구보다 포도나무는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농사지은 포도를 상자에 담을 때 사이좋은 친정아버지와 딱 한 번씩 마찰(?)이 일어난다고 한다. 친정아버지는 딱 무게에 맞게 담아야 한다고 하고, 정미선 선생님은 딱 맞는 무게에 두 송이를 더 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정말 포도 상자가 꽉 차 빈틈이 없다. 그러니 이 포도는 상자에 표기해 있는 무게보다 더 무게가 나가는 셈이다. 정미선 선생님은 두 송이를 담는 거지만 그 두 송이는 마음을 담는 거란다. 그러자니 아내 말이 떠올랐다. 아는 분이 기능성 비누를 달라고 했다. 그 비누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는데... 마침 우리는 비누가 좋아 좀 많이 사 놓고 거의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다. 나 같으면 세 개 정도 주었을 것이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그런데 아내는 다섯 개를 주었다. 아내에게 물으니 세 개는 그냥 보통 주는 거고 두 개를 더 준 것은 마음을 준 거라고 했다. 마음을 준다는 것에 대해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포도 한 송이를 씻어 하얀 접시에 담아 쪽쪽 소리 내어 먹는다. 두 송이의 마음을 담은 포도라 더 맛있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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