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강선재 청주봉정초등학교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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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에서 '실패박람회'가 열렸다는 소식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실패사례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장을 마련하여 재도전을 응원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모두가 성공에 주목하는 때에 실패라니 참 신선하다. 아직도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나라면 어떤 작품을 출품할 수 있을까?

새내기 교사 시절 보상 제도를 중심으로 한 학급경영의 맛을 알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칭찬 목록이 적힌 칭찬통장을 만들고 잘할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발표, 준비물, 숙제 등 아이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통제하며 뿌듯해했다. 가장 활동을 열심히 한 모둠 아이들은 집으로 초대하여 떡볶이 파티를 했다. 영화도 보러 가고, 노래방까지 코스로 돌았다. 보상을 받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을 하고, 보상을 받지 못한 친구들은 더 노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더 많은 모둠 아이들은 보상 제도의 경쟁 속에서 뒤처져 자포자기했다. 보상을 받지 못하면 오히려 열심히 노력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분명히 재미있게 놀았는데, 놀고 난 후유증은 더 커서 서로 다투고 미워했다. 재미있는 놀이를 해도 놀이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놀이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 놀이 중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교사의 관심이 더 중요한 것이란 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학급경영의 방식도 바뀌어 나갔다.

TED강연을 통해 알려진 ‘마시멜로 챌린지'란 게임이 있다. 마시멜로, 스파게티면 20개, 테이프, 실을 사용해 탑을 높게 쌓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세계 곳곳에서 디자이너, 건축가, 경영대학원 졸업자,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게임을 진행했다. 결과는 흥미롭게도 유치원생들이 가장 높은 탑을 쌓았다. 알고 보니 유치원생들의 성공 비결은 실행과 실패, 보완이었다. 어른들이 탑을 쌓는 완벽한 방법을 찾기 위해 토론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유치원생들은 일단 쌓기를 시도하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성공의 초기모델을 얻은 후 계속된 보완을 통해 탑을 쌓았다는 것이다.

교육학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 중 하나인 '학생들은 실수를 하면서 가장 많은 걸 배운다.'를 떠올리게 하는 사례이다. 어디 학생들뿐일까. 나도 실수를 하면서 가장 많은 걸 배운다.

지금 내 수업에는 조미료 빠진 음식처럼 보상 제도가 없다. 학기 초부터 그렇게 하다 보면 어쩌다 작은 사탕 하나를 선물해도 그렇게 좋아한다. 나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했다. 오늘도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실수와 실패를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삶은 실패 진행 중이다. 아니 진정한 배움 진행 중이다.

다가오는 사회에는 창의성(creativity)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뇌과학자들은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으로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고 계획에 너무 매몰되지 말 것, 편견을 깨고 우리가 갖고 있던 수많은 개념의 카테고리를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그 과정이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시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실패를 허용해야 한다. 실패의 경험을 괜찮다 인정해주는 안전한 사회망이 필요하다. 다시 또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삶의 지도를 하나씩 하나씩 그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말해보자.
"실패해도 괜찮아,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
"우리 같이 해볼까?"
다음 수업시간에는 아이들과 실패 자랑대회를 열어봐야겠다.
"애들아, 모두 나와서 실패를 자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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