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의 향기
토종의 향기
  • 중부매일
  • 승인 2018.09.2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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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벼. / 클립아트코리아

이명훈 소설가

 벼. 본 이미지는 칼럼과 관련이 없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중부매일 문화칼럼 이명훈] 금강으로 흘러가는 미호천 가에 이백평쯤 되는 밭이 마련되어 토종포 조성을 할 때였다. 토종 씨앗들을 수집해 나눔의 미덕을 펼치는 <전국씨앗도서관 협의회>의 박영재 회장이 내가 속한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에 초대되었다. 밭에 작물을 심기 전에 천막 안에서 강의를 청해 들었다. "우리나라 토종 씨앗이 25프로 정도만 남고 75프로 정도는 상실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울림이 심상치 않았다. 7, 80대 할머니들이 주로 토종 씨앗들을 가지고 있다. 잘 내놓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진심이 통하면 내놓는다.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토종 씨앗이 25 프로도 안될텐데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런 취지의 말에 먹먹함에 잠기며 언젠가 이분이 하는 일에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강의 후엔 박영재 회장이 손수 가져온 갓무, 반청무, 구억 배추 등의 토종 씨앗과 모종의 파종 시범을 보였다. 그리곤 그분의 자상한 지휘 아래 너른 밭이 그것들로 채워져 나갔다. 그후 토종 밭작물 아닌 논작물 즉 토종 볍씨에 대한 강의를 들은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인 우보 농장의 이근이 대표를 모신 자리에서였다.

"밭일은 물빼기, 논일은 물대기가 핵심일 거예요." 밭과 논이 명료하게 정의되는 기쁨이 있었다. "1910년 이전엔 우리나라 토종 볍씨가 1천400여개였어요. 지금은 사라지다시피 하고 거의 다 개량종이에요."

북흑조, 졸장벼, 화도, 자광도, 앉은뱅이, 자치나...이름도 생소한 쌀들이 이근이 대표의 구성진 입담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 다채로운 이름들은 각 지역의 농부들에 의해 직관적으로 붙여졌다고 한다. "그 다양한 토종벼들이 한반도를 물들였죠."

사라진 아름다운 풍경이 먹먹함 속에 눈에 선했다. "토종벼는 야생종답게 까락이 붙어 있어요. 일종의 수염이죠."

야생이니 까락이니 하는 말도 내 마음을 흔들었다. 개량종은 이것을 정리했다고 했다. 까락은 옷에도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고 피부를 따갑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까락으로 인해 벼는 해충에 강하고 수분이 유지되며 가뭄에도 잘 견딘다고 했다. 그럴 것 같았다. 1910년 즉 경술국치 이전의 시골 풍경이 야생의 다채로운 벼들로 눈물겹게 찰랑였다. "그 시절에 주막의 숫자를 조사한 책이 있어요. 쌀의 수탈을 위해 일본이 만든 책이죠. 그에 따르면 13만개나 되요. 그 어마어마한 주막들에서 주모들이 토종 볍씨가 자란 쌀들로 가양주 즉 막걸리를 담죠. 맛이 다 달라요."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효율성 위주의 농업 정책으로 인해 다양성의 아름다움이 거세된 농촌의 밭과 논이 풍요롭기 보다는 허름하게 여겨졌다. 개량종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먹거리 해결 등을 위한 순기능 역할도 해왔다. 그러나 식물이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든 생명체는 다양성으로 존재한다. 토종 및 전통은 향수나 추억으로서의 가치만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문화의 기반이다. 다양성을 상실하고 기반이 부실한 사회는 결국 황폐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생태적 농업이 절실한 이유이다.

지난번 박영재 회장의 토종 밭씨 강의에 이어 토종 볍씨 강의를 따스하고 애잔한 눈빛으로 경청하는 또 한분이 있었다. 토양학의 권위자인 토명 이완주 박사님이다. 진정한 흙과 진정한 씨앗들의 만남. 뭉클해진다. 이 진정한 기초에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눈을 돌린다면 상실하고 있는 정서와 바탕이 훈훈하고 든든해질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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