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월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은행에서 시민이 대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 뉴시스
2월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은행에서 시민이 대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 뉴시스

[중부매일 사설]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방문과 '평양공동선언'등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빅이벤트'에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남북한 정상은 지난 20일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에도 오르고 천지연에서도 손을 맞잡으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쟁은 이미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온 분위기다. 하지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선을 우리 사회로 돌리면 암울한 경제현실이 펼쳐진다. 실업자가 8개월째 100만 명을 돌파하고 소득격차도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은행은 최근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평균치보다 7.8배 빠르다는 내용을 담은 9월 금융안정 상환자료를 공개했다. 가계부채 증가는 당연한 현상이다. 60세 이상 노년층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작년에 5만개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은퇴한 고령자들이 소득을 확보하기 위해 창업을 선택했지만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폭주가 심해지면서 자칫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가계부채는 올 2분기에만 15.6%로 뛰는 등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엔 베이비부머 퇴직자나 조기 은퇴자들이 상대적으로 진입하기 쉬운 치킨 전문점, 커피 전문점 등 음식점을 많이 차렸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최근 공개한 전국사업체조사 잠정결과 보고서를 보면 작년 말 기준 전국 사업체는 402만477개로 1년 전보다 7만285개(1.8%)가 늘었다. 이 가운데 대표자가 60세 이상인 사업체는 87만5천299개로 1년 사이에 5만1천998개(6.3%) 증가했다. 1년간 늘어난 사업체 수의 약 74%가 노년층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은 2016년 기준 27.5%에 그쳤다. 자영업은 5년만 버티면 선방했다고 보는데 통계치는 열 곳중 7~8곳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죽하면 자영업 생존율이 암 환자보다 낮다는 자조(自嘲)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경제 환경이 열악하고 경쟁이 치열한 여건에서 노년창업의 생존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은행에서 개인사업자 대출과 함께 가계 대출도 받는데 사업이 부진하면 두 가지 대출자금 모두 상환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영업 부채는 국내 가계부채의 가장 취약한 영역이다. 그나마 경기라도 살아나면 좋지만 OECD는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7%로 대폭 하향했다. 경기하락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금융권에서는 직장인들은 생활이 어려워지면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은행 빚부터 갚지만 문제는 영세자영업자들은 빚에 쪼들리면 돌려막기 하다가 파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가처분소득 중에서 원리금 상환에 쓰이는 비율이 42%에 달한다. 100만 원을 벌면 42만 원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써야한다. 이는 임금 근로자(30%)보다 크게 높다. 특히 급격히 늘어난 노년층 자영업자들은 한번 실패하면 빚더미에 앉아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경기부양과 가계부채를 관리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한반도 평화도 중요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고령창업자의 가계부채도 시급한 현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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