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전날 내린 비로 가을이 한결 깊어진 13일 아침 북한산 만경대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건너편 인수봉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도봉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2017.10.13 / 뉴시스
전날 내린 비로 가을이 한결 깊어진 13일 아침 북한산 만경대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건너편 인수봉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도봉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2017.10.13 / 뉴시스

[중부매일 아침뜨락 류시호] 얼마 전, 대학시절 기숙사 선후배들과 도봉산을 갔다. 험준한 봉우리가 하얀 구름을 껴안은 하늘을 보며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맑은 개천이 흐른다. 조금 더 가면 서울 경기지역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서원이며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도봉서원'이 있다. 근처에 이병주 소설가의 북한산 찬가비를 본 후 이매창과 유희경의 시비(詩碑)로 갔다.

이곳에서 역사 전공 고교교사 출신 K선생과 국문학을 전공한 G교장 그리고 중앙 일간지 문화부에 근무한 K교수가 서원에서 바라보는 사림과 붕당 정치와 조선시대 이매창과 유희경 시에 대한 특강과 토론이 있었다. 여기에 두 사람의 시비가 있는 것은 유희경이 도봉의 산수를 사랑하며, 도봉서원 인근에 임장(林莊)을 짓고 기거하다 여생을 마쳐서 시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곳 시비에는 매창이 유희경과 이별하면서 지은 시조가 있는데, 이 시조는 조선 후기 옛 시가집인 가곡원류에 실려 전하는 이별가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 시조는 교과서에 실려 들어 본 글로 주인공은 바로 조선시대 기생이었던 매창(梅窓)이다.

매창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은 그녀의 나이 스무 살 무렵으로 그가 사랑했던 남자는 스물여덟 살이나 연상인데다가 천민 출신인 촌은(村隱) 유희경이었다. 양반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이 높았던 매창이 신분이 높지 않았던 유희경에게 강하게 끌렸던 것은, 천민 출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과 둘 다 시문에 능하여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매창의 문학적 재질이 빛을 발하고 그의 뛰어난 시문학이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유희경을 만나게 되면서 부터이다. 당시 한양의 시선(詩仙)으로 이름이 자자하던 유희경이 부안에 내려와 2년 동안 촌은과 매창 간의 애정이 원앙처럼 무르익었다.'남쪽 지방 계랑의 이름을 일찍이 들었는데/ 시와 노래 솜씨가 서울에까지 울리더군/ 오늘 그 진면목을 보고 나니/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구나' 이 시는 유희경의 촌은집에 수록한 글이다.

시에 능통했던 유희경과 매창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을 시를 통해 주고받았다. 유희경의 문집에 실려 있는 시들 중에 매창을 생각하며 지은 시가 7편으로 확인된다. 부안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이별 후에도 두 사람은 사랑을 잊지 못하고 서로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함께 시를 논했던 유희경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고, 이후 이들에게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매창이 3년 뒤인 38세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매창의 흔적은 그녀의 시비(詩碑)가 남아있는 전북 부안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부안출신 시인 신석정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고 하였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하늘에서 해가 세상을 비추다가 때가 되면 물러가고 달이 올라온다.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는데 잠시 쉬어가면서 해와 달의 만남 이매창과 유희경의 시 세계를 논하는 것도 보람 있는 시간이다. 도봉산에서 문학기행 산책은 축복이 담겨 있다. 혼자 걸으면 건강이, 둘이 걸으면 사랑이, 셋이 걸으면 우정이, 함께 걸으면 희망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 모두 가끔씩 시간을 내서 인문학 산책도 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새로움에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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