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충청수영성부터 갈매못 성지까지
역사·문화·종교 연계된 교육의 장 활용

오천항 전경.

[중부매일 장영선 기자] 보령하면 대천해수욕장과 머드축제,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이 손쉽게 떠오르지만, 과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인 오천면에는 조선 초기에 설치돼 고종 33년인 1896년 폐영될 때까지 군선이 142척, 수군이 8천400여 명에 이르는 등 서해안의 안보를 책임진'충청수영성', 다산 정약용과 채팽윤이 극찬한 천하절경'영보정', 백제시대 열녀의 표상인 도미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도미부인 사당', 카톨릭 신자들의 순교지인'갈매못 성지', 쪽빛 바다와 오천항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충청수영 해안경관전망대'는 관광과 문화, 역사가 숨 쉬는 충청의 비경이다.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 오천항

오천은 예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주포, 주교, 청소 등 오천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만 세 갈래나 된다.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까닭에 방파에 등 별도의 피항 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은 곳이다. 따라서 방파제 없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특히 오천항에서 이루어지는 잠수기어업으로 채취한 키조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산물이다. 키조개 생산량은 연간 4000여 톤으로, 전국의 70% 이상을 채취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국내에서 소비되고, 일부는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키조개는 여느 조개와 달리 큼직한 패주(貝柱)를 갖고 있는데 100g당 아연이 12.8㎎이나 함유돼 있어 아연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으며, 단백질(100g당 18.2g)과 타우린(100g당 994mg)이 풍부하고 피를 깨끗하게 하는 정혈작용(精血作用)이 있어 임산부의 산후 조리나 피로 회복에 좋으며 술에 혹사당한 간장을 보호하는데도 유용한 수산식품이다.

키조개는 농가에서 곡식을 까불어 돌이나 쭉정이 같은 것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箕-챙이)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크기도 크기지만 다른 조개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향긋하며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이 가을 키조개의 특징이다.

오천항은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초부터 충청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군항이었으며 백제 시대부터 화이포라는 항구로 이용되었고, 항구 입구에 위치한 충청수영성(사적 제 501호)에서 오천항을 조망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서해 해군사령부 '충청수영성'과 천하절경 '영보정'

충청수영성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9호로'보령 오천성'으로 지정됐다가 2009년 8월 24일'보령 충청수영성'으로 명칭을 바꾸어 사적 제50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12만 5,326㎡.

충청도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수영(水營)의 성으로 1510년(중종 5)에 축조하였는데, 구릉의 정상을 중심으로 주변에 성을 쌓아 성 안에서 성 밖을 관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성 안에는 영보정(永保亭)·관덕정(觀德亭)·대변루(待變樓)·능허각(凌虛閣)·고소대(姑蘇臺)와 옹성(甕城: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 5개, 문 4개, 연못 1개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진남문(鎭南門)·만경문(萬頃門)·망화문(望華門)·한사문(漢舍門) 등 4문은 모두 없어지고, 서쪽 망화문터의 아치형 석문(石門)만이 남아 있다. 이 성은 해변의 구릉을 정점으로 쌓은 성이어서 바다를 관측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15년 11월에는 조선시대 서해 해군사령부 충청수영성의 대표시설이면서 다산 정약용이 '세상 경치 중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한 누각 영보정이 137년 만에 복원됐다.

영보정은 충청수영성 안에 위치해 천하절경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시는 역사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복원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지난 2011년 영보정 지(地) 발굴조사와 학술조사를 마치고, 2013년 실시설계용역, 문화재청 설계승인을 거쳐 문화재전문가의 현장기술 지도를 통해 복원을 구상했으며, 지난 2013년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1년 10개월 동안 11억 원의 예산을 들여 복원공사를 완료했다.

복원된 영보정은 이익공(기둥머리에 두공과 창방에 교차되는 상하 두 개의 쇠서로 짜여진 공포)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175.44㎡ 규모이며, 1504년(연산군 11년) 충청수사 이량(李良)에 의해 창건돼 7차례 중·개수를 거쳤고 1878년(고종 15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137년 만에 다시 복원됐다.

영보정 복원은 충청수영성 대표시설을 복원한다는 의미와 함께 일제 침략기 대부분이 파괴된 충청수영성의 일제시대 상흔을 치유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세상에서 호수·바위·정자·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보정(永保亭)을 으뜸으로 꼽는다"고 했으며, 채팽윤은 "호서의 많은 산과 물중에 영보정이 가장 뛰어나다"고 했을 만큼 경관이 뛰어나 선비들의 극찬을 받아왔던 누각이다.

한편 영보(永保)는 영원히 보전한다는 뜻으로 천험(天險), 인화(人和), 정관지락(亭觀之樂)을 영원히 보존한다는 의미이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충군우국지의(忠君憂國之意)를 담고 있다
 

#천년 풍상 변치 않은 절개, '도미부인'

도미부인 사당.

우리나라 열녀의 표상으로 전해지고 있는 도미부인은 백제 개루왕(128~166년)때 보령 미인도에 출생, 부부가 수난을 겪기 전까지 도미항에서 살아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소문난 미인에 행실이 남달라 개루왕의 온갖 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강행실도, 동국통감 등에 기록돼 전해져 오고 있다.

보령시는 1990년대 초 오천면 소성리에 도미 부인 사당인 '정절사'를 짓고 매년 경모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1995년 정부 인증 도미 부인 표준 영정도 제작했다. 성주 도씨 문중이 2003년 경남 진해시의 도미 부부 추정 묘를 보령시로 이장했다

#아름다운 순교성지'갈매못'

갈매못 성지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는 1866년 3월 23일 천주교 병인박해 때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보령에 있는 충청수영으로 이송된 다섯 성인이 1866년 3월 30일 수영 근처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한 장소로 현재 순교자기념비, 기념관, 사제관, 수녀원 등이 건립되어 있다.

갈매못 성지는 역사적으로 병인박해(1866년)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송되어 순교한 곳 일뿐 아니라, 다블뤼 주교의 유품과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성지이다.

이곳은 1925년 공주 최말구 신부 등이 현지 확인을 통해 발견되었으며, 1927년부터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순교터에 다섯 성인의 순교 기념비와 야외 제단이, 1999년 순교기념관이, 2007년에는 대성당이 건립돼 순교자들을 맞고 있다.

갈매못 성지 인근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충청수영성이 있으며, 도미부인 사당, 이지함 선생의 묘 등 역사, 문화, 종교가 연계될 수 있어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13년 2월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188호로 지정되는 등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특히 자연 환경적으로 천주교 성지 중 유일하게 바닷가에 위치한 성지로 그 경관이 매우 뛰어나 매년 4~5만 명의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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