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20일 오후 대전 중구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중구청 직원들이 효문화뿌리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2016.09.20. / 뉴시스
20일 오후 대전 중구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중구청 직원들이 효문화뿌리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2016.09.20. / 뉴시스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전원] 문어(文魚) 집안과 멸치집안에 혼담이 오고가는데, 멸치 집안의 최고 어른이 노발대발하며 "우리 멸치 집안은 뼈대(根本)가 있는 집안이야. 풍채만 허여멀쑥한 뼈대도 없는 문어와 혼인을 하다니, 말도 안 되지." 라며 그 혼담을 거절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문어는 "바보 같은 것들. 뱃속에 똥 밖에 없는 것들이. 우리 문어 집안은 그래도 속에 먹물(有識)이 든 집안 아닌가. 어디다 대고서 감히."라며 무시하는 말로 콧방귀를 낀다. 자긍심이 강한 가문간의 명예다툼이야기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뿌리교육의 일환으로 촌수따지기 그림(計寸圖)표를 만들어 주고, 그 표에 촌수의 명칭과 그에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도록 하는 방학과제를 제시했다. 자기를 중심으로 위로 고조부모까지 4대의 인적사항을 촌수에 맞추어서 빈칸에 적어 넣는 것이다. 아버지의 계통과 어머니 쪽의 혈통을 알아보는 것으로 학부모의 협조가 필요했다. 촌수가 멀어지면 해당자의 이름을 채우기가 더욱 어렵다. 평소에 왕래가 없었으면 땅 띰을 못하니 그냥 없음이라고 적을 수밖에.

학부모가 관심이 있으면 자녀들에게 뿌리교육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겠지만, 자기 아버지를 춘부장이라고 부르거나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이들은 한 두촌 만 건너가도 남남이 되기 쉽다. 핵가족화로 촌수를 따질 기회도 없었겠지만 그런 명칭을 사용해본 적도 없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찜통더위에 아이들의 보챔으로 짜증이 난 학부모가 항의 전화를 한다. '이런 걸 숙제라고 냅니까? 부모가 몇 번씩 바뀌는 세상에 뿌리가 어디 있습니까? 쌤은 뿌리를 압니까? 시대에 맞는 교육 좀 하세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일방적인 통화는 끊어진다. 문자가 의식을 가격하니 정신을 잃는다. '개 촌수만도 못한 세상에 촌수는 따져서 뭐합니까?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자녀를 폭행 학대하는 부모를 알아서 뭐할 겁니까? 그 부모에 그런 자식은 영영 모르는 게 더 낫습니다. 촌수 몰라서 못사나요? 사람이 못돼서 그런 것이니까 제발 사람이나 잘 만들어 주세요.'

'선생님, 좋은 숙제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기회에 모르고 지냈던 우리의 뿌리를 찾았습니다. 저희 아들이 5대독자란 말만 들어왔는데, 멀고도 가까운 친척을 찾아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북이산가족보다 더 먼 친척이 바로 옆 동네에 살고 있었어요. 앞으로 서로 오가면서 친 가족처럼 잘 지내기로 약속도 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사례전화가 분위기를 바꾼다. '선생님, 저는 베트남에서 온 '엉망 땅'의 엄마입니다. 우리도 이 숙제를 해야 하나요?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이 이다음에 조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알려줄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보려고요. 자료는 제가 준비해서 가져갈 테니 한 번 만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탁드려요.'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뿌리는 말 그대로 사물의 한 부분이 땅 속으로 뻗어 줄기를 떠받치고 물과 양분을 빨아올려 생명체가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니 나를 나아서 길러준 부모가 바로 그 뿌리다. 무생물도 뿌리가 있고, 미물도 어미와 떨어지면 제 부모를 찾느라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뿌리를 모른대서야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멸치 이상으로 사람답게 뼈대 한 번 잘 세워보자.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