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첫 단풍 관측된 월악산. / 연합뉴스
첫 단풍 관측된 월악산. / 연합뉴스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경구] 머리가 아픈 아침이었다. 전날에도 몸이 안 좋았다. 좀 더 자면 덜 아플 것 같고, 아니면 몸이 늘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침대에서 망설였다. 아내는 가까운 숲에 가자며 달콤한 유혹을 했다. 특히 두 번 간 적이 있는 월악산 국립공원 '만수 계곡 자연관찰로'에 가잖다. 아내도 나도 가깝게 지내는 누나랑 함께. 그러면서 누나가 도시락을 싸온다는 말을 곁들였다. 맛있는 누나표 도시락이 금세 머리에 그려졌다. 누나표 도시락은 참 귀엽다. 예쁜 바구니에 가지런히 담은 음식들... 명화에서 본 '풀밭 위의 식사'인가 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아내 말대로 스트레스가 쌓여 머리도 아플 수 있으니... 스트레스도 날릴 겸 집을 나섰다. 마침 날씨까지 좋아 가을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올 여름 휴가는 집안에 일이 있어 생각도 못했다. 근처 계곡에 발이라도 담그고 커피 한 잔 먹고 싶었는데... 그런 여유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떠날 수 있다 해도 속이 불편할 게 뻔했다. 그런데 오늘은 몇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는 여름휴가 대신 가을 휴가를 떠났다.

우리 셋은 만수 계속 자연 관찰로를 걸었다. 구름다리를 건너 가끔씩 만나는 충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시화가 참 좋았다. 어찌나 글을 잘 썼는지 모두 시인이었다. 가장 신기한 것은 물이 정말 맑고 깨끗했다. 물고기들의 그림자와 작은 돌 하나하나까지 잘 보였다. 바람에 잔물결이 없다면 물이 없는 줄 알 정도로 투명했다.

우리는 "와~와!"만을 반복했다. 정말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이 계곡은 출입이 전면 금지된 구간입니다'란 작은 안내문이 보였다. 이제야 알았다. 왜 맑은지를. 모두들 손이라도 발이라도 담그고 싶음을 잘 참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쉴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놓았고, 자연 체험장 옆 건물에 탁자가 보였다. 우리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얘기하며 배낭에서 꺼낸 옥수수와 사과 등을 먹었다.

우리도 준비한 간단한 도시락을 먹었다.

새소리 물소리와 함께 먹는 도시락은 정말 꿀맛이었다. 얼마만의 여유인지... 두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순간, 며칠 동안 아팠던 머리가 괜찮았다. 신기한 정도로. 그때였다. 톡, 하고 무언가 발끝에 떨어졌다. 도토리였다. 우리는 셋은 도토리 공기를 했다. 이젠 손이 말을 듣지 않지만 도토리 다섯 알이 어릴 적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옆을 보니 이번엔 작은 밤톨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야생화도 어찌나 눈부신지 휴대폰에 찰칵찰칵 모두 담았다. 그리고는 좀 더 계곡을 올라갔다. 오래 전 풍경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사극에서 본 옛사람들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살짝 붉은 색을 띤 잎사귀들이 보였다. 곧 단풍이 시작되겠다. 올해는 지난 달 27일 설악산의 첫 단풍으로 시작으로 10월엔 여기저기 무르익은 모습을 볼 수 있단다. 올해 단풍은 고온으로 평년보다 다소 늦어진다고 하니 더 늦게 까지 볼 수도 있는 셈이기도 하다. 단풍이 고운 만수 계곡 자연관찰로는 어떨지 꼭 다시 찾고 싶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떨어진 단풍잎들은 물 위에나 바위 위에 내려 앉아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 길 위에 쌓이면 밟기에 아까울 것 같고. 휴대전화 속 찍어 왔던 사진을 다시 본다. 금방이라도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곧 노랗고 붉어질 만수 계곡이 눈앞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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