玩火自焚 [가지고 놀 완] [불 화] [스스로 자] [사를 분]

불장난을 하다가 자신이 불에 탐. 自業自得(자업자득)

지난 추석 무렵이었다. 조상 산소에 벌초를 하러 고향에 내려갔다. 동생들과 한참 벌초에 매진하다가 갑자기 증조부 산소 앞에 자란 잡목이 눈에 들어왔다. 톱 하나 달랑 들고 언덕으로 향했다. 한 20그루 베어냈나? 눈으로 땀이 흘러들었다. 땀 닦을 요량으로 몸을 움직이는 순간! 발 아래가 쑥 빠지는 느낌과 함께 내 몸이 2m 아래로 휭 날아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발이 조금 부어오르고 욱신거렸지만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겠기에 아픔을 참고 모든 벌초를 마쳤다.

동생 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간단한 問診(문진) 후 X-ray사진을 찍자 발목 골절이었다. 병원의 젊은 의사가 물었다. "아니! 이렇게 부러졌는데 왜 이리 늦게야 오셨어요? 수술해야 합니다." 온화하지만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다음날 오전, 수술이 완료되었다. 철심을 박고,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쩔뚝이며 움직여야 했다. 가까운 친구와 동료들이 연락을 받고 병실로 찾아왔다. "괜찮아? 어이구! 조심 좀 하지!! 맨날 20대 청춘인줄 알고 살더니"

손님들이 돌아간 뒤, 조용해진 병실에는 환자들의 작은 신음들, 그리고 오가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왔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가로등 가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산보하거나 조깅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내가 전에 산보할 때,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내 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쩔룩대는 아빠 모습이 어정쩡했는지, 작은 딸이 "아빠! 이런 모습은 기념사진으로 남겨야 해요. 자, 멋있게 포즈!" 허나 포즈를 취할 입장이 아니었기에 그냥 목발 집은 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가 봐도 정말이지 이상했다. 내가 왜 이러고 서있지? 결론은 너무나 쉽게 내려졌다. 자신이 아직도 젊다고, 아니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오만과 편견이 지금의 나를 목발 짚게 만들었구나.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고 살아온 나 자신의 실책. 한마디로 자업자득이었다. 그러자 『左傳(좌전)』에 있는 고사가 떠올랐다. 그 고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衛庄公(위장공)에게 州?(주우)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殘惡無道(잔악무도)하여 폭력을 즐겨 사용하였다. 庄公이 그를 지나치게 귀여워한 나머지 더 이상 어떻게 바로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庄公 사후에 桓公(환공)이 즉위하였다. 州?가 기회를 노리다가 桓公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뒤, 이어 宋(송), 陳(진), 蔡(채) 삼국과 연합하여 鄭國(정국)을 공격하였다. 魯隱公(노은공)이 이러한 상황을 살피다가 大夫(대부) 衆仲(중중)에게 "州?가 장차 어떻게 될 것 같소?"라고 물었다. 衆仲이 "그가 무력의 남용을 좋아하는 것은 마치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아 언젠가 소홀히 다루다가 자신이 그 불에 타서 죽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후에 州?가 과연 다른 사람에게 속아 陳國(진국)에 들어갔다가 살해되었다. '玩火自焚'은 衆仲의 이 말에서 비롯되었다.

庄公이 州?를 지나치게 총해했던 오류나 자신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나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自業自得이라는 晩時之歎(만시지탄)을 면하려면 늘 깨어있는, 늘 사고하는 자신이 되는 방법만이 최선이다.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 이는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아내는 가장 현실적 방법이리라. 성큼 다가온 가을! 나 자신의 성찰에 조금의 시간을 할애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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