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명승의 부활

충주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에 위치한 팔봉서원은 지난 2003년 6월 충청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됐다.

# 팔봉서원 이야기

팔봉서원(八峰書院)은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에 있다. 충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으로 1586년(선조 19)에 세워졌다. 서원이 계획된 것은 1582년(선조 15)이다. 충청감사, 충주목사 그리고 이 지방의 사림(士林)이, 1529년부터 1533년까지 토계리로 귀양와 살았던 계옹(溪翁) 이자를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세우자는 논의를 했다. 이자는 1519년 기묘사화로 삭탈관직되어 음성 음애동(陰崖洞)으로 귀양을 온 다음, 1529년 충주 토계리로 이거해 몽암(夢庵)을 짓고 살다 죽었다.

이자가 귀양살이 하던 토계리 몽암은 달래강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에 달래강 북쪽 산록에 1586년 서원을 세우고, 이자와 탄수 이연경(李延慶)을 배향하게 되었다. 서원의 이름은 이들의 호인 계옹과 탄수에서 한자씩 따 계탄서원(溪灘書院)이라 불렀다. 이들이 함께 배향된 것은 기묘사화로 벼슬을 잃고 충주지방에서 교유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계탄서원은 사당, 강당, 동재와 서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는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과 소재 노수신(盧守愼)을 배향했고, 1672년(현종 13)에는 충주 유생 한치상(韓致相) 등의 상소로 팔봉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팔봉서원은 그 동안 계탄서원, 검암서원(劍巖書院)으로 불렸다, 그것은 서원 앞에 칼바위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봉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98년 정부지원과 후손들의 출연으로 서원이 재건되었고, 2003년 6월 충청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대지 200평에 팔봉서원 편액이 걸린 솟을삼문이 있고, 그 안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이 있다. 사당의 북쪽 측면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재실이 있다. 사당의 남쪽 측면으로는 팔봉서원중수기념비(八峰書院重修紀念碑)가 있다.

팔봉서원은 달천강을 낀 서쪽 경사면에 동남향으로 배치되었다. 서원 건너편에는 칼바위와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 있다. 이 산줄기를 우리는 팔봉산이라 부른다. 칼바위에는 인공폭포가 만들어져 그를 통해 석문천이 달래강에 합류된다. 그리고 칼바위 폭포 위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칼바위를 넘어 팔봉산으로 오르는 길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등산로에 전망대까지 만들어 팔봉마을과 서원을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다.

 

# 죽은 팔봉서원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칼바위 사이로 보이는 팔봉마을.

그런데 팔봉서원이 그 동안 완전히 죽어 있었다. 봄에 제향을 지내는 날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문을 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수주팔봉, 칼바위는 알아도 팔봉서원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팔봉서원에 대한 소개가 위키백과 등 백과사전과 디지털충주문화대전에 나온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에는 또 '죽은 팔봉서원 살려내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팔봉서원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충주에 있는 중심고을연구원이 주관하는 '죽은 팔봉서원 살려내기' 프로젝트는 문화재청의 향교서원 문화재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는 3월부터 시작되었다. 첫 프로그램이 '배향인물 역사찾기'다. 3월부터 6월까지 매월 1회 서원에 배향된 인물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이다. 3월에 이자, 4월에 이연경, 5월에 김세필, 6월에 노수신 선생의 자취를 찾아 음성, 용인, 괴산, 상주 등을 답사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팔봉서원 찾아가기'다. 봄이 오는 4월 달래강을 따라 충주 충렬사에서 팔봉서원까지 올라가며 자연과 생태, 역사와 지리, 인물과 문학 등을 살펴보는 인문학 기행을 했다. 5월에는 세 번째 프로그램 '배향인물 공부하기'를 했다. 매주 1번씩 팔봉서원에 모여, 이자, 이연경, 김세필, 노수신 선생의 삶과 학문을 공부했다. 이때는 전문학자를 모시고 강의와 토론방식으로 공부를 진행했다.

무더운 여름인 7월과 8월에 진행된 네 번째 프로그램은 '국가지정서원 방문하기'다. 유명서원으로 많은 사람이 찾고,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잘 진행하는 곳을 찾았다. 대표적인 서원이 영주 소수서원과 영천 임고서원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이들 서원에서 행하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것이다. 소수서원은 선비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임고서원은 포은유물관과 연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다섯 번째 프로그램은 '예약(禮樂) 실천하기'다. 예로는 제례와 혼례를 실행했고, 악으로는 가야금 배우기를 실천했다. 제례는 5월에 배향인물 네 분에 대한 춘계제향을 주관했다. 그리고 10월 하순에 결혼 60주년을 맞이하는 부부를 찾아 회혼례를 거행할 예정이다. 9월과 10월에는 매주 1회 팔봉서원에 모여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 이 프로그램 역시 가야금 전문가를 초빙해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서 11월에는 팔봉서원의 역사를 정리하고, 행사 결과를 기록한 팔봉서원지를 발행할 계획이다. 팔봉서원의 역사가 430년이 넘었지만, 팔봉서원지가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죽은 팔봉서원 살려내기' 사업은 의미 있다. 팔봉서원 400년 역사를 정리하는 뜻 깊은 일이기 때문이다. 100년 이상 죽어있던 팔봉서원이 21세기 들어서야 살아나고 있다.
 

# 살아났다 팔봉서원, 그 다음은?

충주 중심고을연구원이 주관하는 '죽은 팔봉서원 살려내기' 프로젝트 중 '배향인물 역사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들.

살아난 팔봉서원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2019년 사업의 과제다. 그래서 중심고을연구원에서는 2018년 사업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한두 가지 사업을 추가했다. 사업은 크게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첫째가 '팔봉서원의 문화관광자원 만들기'다. 둘째가 '팔봉서원의 역사/인물 재조명하기'다. 셋째가 '육례(六禮)의 재현'이다. 넷째가 '배향인물의 시가(詩歌) 공부하기'다.

관광자원을 만들기 위해 팔봉서원 주변 달래강의 문화생태 탐방로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카누와 카약타기 체험을 넣으려고 한다. 팔봉서원의 역사·인물 재조명하기는 2년째 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배향인물 공부하기가 심화단계로 올라가고, 자취 찾기의 폭이 넓어진다. 예를 들면 노수신의 유배지인 진도를 찾아 그가 남긴 흔적과 유산을 찾아볼 것이다.

육례의 재현에서는 제례와 혼례 외에 기로연을 개최한다고 한다. 배향인물의 시가 공부하기가 새롭게 추가되는 프로그램이다. 시문을 특히 많이 남긴 사람은 노수신이다. 그의 학문은 주자학에서 출발하지만 양명학까지 아우른다. 그러므로 그의 문집에서 의미 있고 재미있는 부분을 발췌해 교재로 만들고, 이를 독파할 예정이다. 그리고 2018년 가야금을 배웠으니, 2019년에는 판소리와 시조를 배울 계획을 하고 있다.

봄과 가을에는 대중공연으로 악가무를 결합한 예술 한마당을 펼칠 계획도 있다. 팔봉서원은 산과 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명승이다. 이곳 자연을 배경으로 봄과 가을 에술 시나위가 한바탕 이루어지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중심고을연구원은 2019년에도 팔봉서원을 살려내고 알리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팔봉서원의 역사가 재현되고 시민과 관광객들은 팔봉서원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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