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 하던 날
추곡수매 하던 날
  • 중부매일
  • 승인 2018.10.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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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윤희 수필
사진. / 김윤희 제공

이른 봄부터 주인과 고락을 함께 하며
오늘의 결실로 영글어온 나락들,

드디어 이들이 줄줄이 모여들어 평가를 받는 날입니다.
새색시인양 몸단장하고 가마니 속에 얌전히 들앉아 있어도
이들은 이미 온 동네 온 가족의 희망입니다.

평가를 받는 나락이나 주인이나 한마음이 되어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평소 다정했던 검사원도 오늘만큼은 일본순사처럼 느껴집니다.
긴 대롱 가슴팍 '쿡' 찔러 보고는 1등급, 2등급, 등외,
도장한번 찍으면 그것으로 값이 매겨지는 겁니다.

'잘 좀 봐주지'
알량한 친분 내세워 눈 찔끔대도 오늘은 영 딴전,
나름대로 공정성을 기하는 것이려니.
야속하지만 이미 참는 것에 익숙해온 농심 아니던가?

추곡수매 하는 날
복돌 아제는 아들, 딸 혼사 밑천으로,
동이네는 대학 등록금으로 몫몫이 정해지지만
한 자락 우수리로는 쇠고기 국 푸짐하게 끓여
온 가족 저녁상에 올라 도란도란 시름 달래던 시절
아! 그때 그 시절은 그래도.



1979년 가을, 농협공판장 앞 풍경이다. 나락이 볏가마니 속에 켜켜이 담겨 총출동해 있다. 한 해 동안 농부들이 흘린 땀과 정성, 그리고 사랑이 빚어낸 결정체이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이 날을 위해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는 봄부터 볍씨를 고르고 씨앗을 뿌렸다. 쌀은 사람의 손길이 여든 여덟 번을 거쳐서 탄생된다고 한다. 하얀 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이면 흐뭇한 밥상이 되던 그때 그 시절 추곡수매 사진 한 장을 마주하니 어릴 적 기억이 풍요로움으로 와 안긴다.

추수한 볏단을 집으로 끌어들이는 날이면 괜스레 신이 나서 겅중거렸다. 소달구지나 지게로 져 나른 볏단을 앞마당에 수북이 부려두면 한편에선 저녁 해가 뉘엿해지도록 둥그렇게 낟가리를 쌓아올린다. 동네사람들이 품앗이로 일을 거들고, 한 단 한 단 볏단을 들어주는 아이들 조막손도 한 몫을 한다. 추수철엔 부지깽이 일손인들 마다할 때가 아니다. 담장 높이보다 더 높게 올라가는 벼 낟가리를 보면 어린 나이에도 부자가 된 뿌듯했다.

다음날은 하루 종일 와랑와랑 탈곡기 소리로 동네가 요란하다. 그 당시 우리는 탈곡기를 와랑기라 불렀다. 아버지와 품 얻은 아저씨가 같이 와랑기를 밟아대며 정신없이 볏단을 들이대면 벼들은 순식간에 후드득 후드득 털리고, 빈 볏짚은 연신 등 뒤로 넘겨진다. 신기하게 둘이 기계처럼 한 몸으로 움직인다. 볏단을 집어주는 사람, 터는 사람, 뒷배 보는 사람들이 척척 호흡을 맞춰 일사천리로 일을 해나간다. 잠깐 쉴 참에 그 신기한 와랑기를 한번 밟아 볼 요량으로 대들다 어른들에게 혼 줄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발로 밟는 수동식이라 해도 돌아가는 기계에 볏짚이 딸려 들어가면 다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리대도 못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신기한 장난감으로 보이니 어쩌랴. 몰래몰래 밟아본 그 덕분에 어디서든 골동품처럼 전시되어 있는 와랑기를 보면 지금도 정감이 가곤 한다.

탈곡되고 난 볏짚은 볏짚대로 마당 한 켠에 쌓아 볏짚가리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헐어 썼다. 초가지붕을 새로 이을 때 주 재료가 됐다, 쇠죽을 끓일 때 여물로 많이 사용했고, 겨우내 아궁이 불쏘시개로도 쓰였다. 또한 쌀이나 벼를 담을 수 있는 가마니를 짜거나 멍석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 집 사랑방 윗목엔 늘 가마니틀이 있었다. 겨울 농한기 때에는 새끼를 꼬고, 가마니 짜는 일도 농촌 풍경중의 하나였다. 아슴아슴 멀어져가는 기억을 붙잡아 본다.

새끼를 꼬아 가마니틀 달대에 늘인 날줄 사이사이로 볏짚을 서너 올씩 바늘에 걸어 씨를 먹이면 바디가 철거덕 철거덕 여지없이 받아쳤다. 슬근슬근 메기고 받는 손길 리듬 따라 힘찬 바디질 소리로 깊어가는 겨울 밤, 구수한 얘기와 함께 촘촘히 가마니가 짜였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탈곡된 나락은 햇볕에 적당히 잘 말려야 수매에서 상위 등급을 받는다. 농사일은 어느 부분 하나 정성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온 정성으로 가꾸어 탈곡한 벼들이 가마니에 담겨 농협마당에 즐비하다. 켜켜이 쌓인 채 등급 판정에 마음을 졸이고 있노라면 길쭉한 대롱 하나가 '쿡'하고 가마니 옆구리 한쪽을 쑤시고 들어온다. 대롱에 담긴 나락의 상태를 보고 검사원이 등급을 내리고 등급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것이다. 그러니 검사원과 어떻게라도 눈을 좀 맞추고 잘 보이려 애를 썼을 터이다.

1970년대 그때 그 시절 농촌에서는 추곡수매가 가장 큰 목돈 마련의 창구요, 집안의 연간 계획의 토대였다. 와랑기 소리와 함께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가계의 근간이 되었던 쌀농사의 가치도, 추수풍경도 옛 이야기가 되어 간다. 낡은 사진속의 추억이 와랑와랑 엷은 여운을 남기며 가을볕 속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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