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주말을 맞아 속리산 국립공원을 찾은 나들이객들이 절정을 맞은 단풍을 만끽하고 있다./신동빈
주말을 맞아 속리산 국립공원을 찾은 나들이객들이 절정을 맞은 단풍을 만끽하고 있다. / 신동빈

[중부매일 문화칼럼 이명훈] 두문동 72현 이야기는 내 가슴을 강렬하진 않지만 은근히 물들였었다. 강원도의 강림면에 있는 예버덩 문학의 집에 작가로서 입주한지 꽤 되었어도 이 지역이 그것과 관계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원천석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그런 일들이 선명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조선 개국 3년 전인 1389년. 그때로 잠시 돌아가보자.

어지러운 고려 말에 이성계 세력의 욕망이 사납게 꿈틀대던 그해의 마지막 날. 두 명의 왕이 같은 날에 참살된다. 부자지간인 그들은 우왕과 창왕. 우왕이 24살, 창왕이 9살 때였다. 왕의 칭호를 벗어던진다면 24 살의 청년과 9 살짜리 아들인 소년이 정치적인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 두 왕이 각기 유배지인 강릉, 강화에서 최후를 맞이할 때 이곳 강림에선 그 모든 것을 꿰뚫고 바라보는 선비이자 시인, 두문동 72 현의 한 사람인 원천석이 있었다.

"시장 바닥에 살면서 산 속에 산다고 비웃지 마소
산에는 맑은 빛이 있고 나무에는 그늘이 있다오
옛날이나 이제나 한결같은 구름과 안개를 사랑하고
해와 달을 따라서 스스로 뜨고 잠길 뿐일세"

패권을 위해 득세하려는 이성계 세력에 대한 개탄이 저 싯귀엔 다소 얌전하지만 그 시의 다른 부분에 강하게 깔려 있다. 그들이 시장 바닥에 산다고 원천석은 적는다.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시장이다. 시장은 실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곳 강림면의 시장은 지금도 오일장이 선다. 이곳은 전국에서 다섯 개의 오지 중 하나였던 곳이다. 자그마한 마을을 끼고 주천강이 흐른다. 강을 따라 선계 마을이 있고 좀 지나면 월현이라는 곳이 있다. 월현에서 길이 끝났었다고 한다.

원천석의 다른 시를 보면 '작은 떡과 맛있는 안주에 가는 국수까지 배불리 먹고 나자 온갖 시름이 없어졌네.'라는 게 있다. '풍년이 들 조짐이라 빛이 더욱 새로우니/집집마다 사람들이 경사롭다고 외치네/저녁에 날이 개어 우연히 동산을 바라보다가/나무마다 매화꽃이 피어 봄인가 착각했네.'이런 시도 있다. 이 둘만 보더라도 원천석은 소박과 서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언어는 상황에 따라 색칠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성계 일파에 대해 시장 바닥을 부정적 은유로 쓴 것뿐이다. 원천석은 그들에게 산속에 산다고 비웃지 말라고 한다. 자신을 비웃지 말라는 것이며 그 산은 강림면을 에두르는 치악산일 것이다. 그 산엔 맑은 빛이 있고 나무에는 그늘이 있다고 적고 있다. 원천석은 산 속 나무의 그늘에 드리운 깊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잣나무나 버들, 진달래의 그늘에도 마음을 적셨을 것이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맨 윗 시의 3행에선 '한결같은', 한문 원문으로는 단(但)을 쓰고 있다. 4행에서는 '따라서' 즉 종(從)이라고 쓰고 있다. 그의 마음은 이처럼 자연과 고귀함에 대해서 한결같고, 따르는 것은 해와 달 같은 자연이나 의리, 가치일뿐이다. 두문동 72현에 대해선 정확한 기록의 부재로 다소 안개에 가려있지만 분명히 실재했던 그 붉은 마음이 설핏 와닿는다. 원천석은 태종의 스승이기도 해서 조선이 개국된 후 태종은 스승인 원천석을 찾아 궁궐을 떠나 먼 오지인 이곳 강림면까지 행차했다. 그러나 원천석은 임금인 그를 만나지 않고 피했다고 한다. 초지일관의 붉은 마음이 이 시대의 부화뇌동하는 숱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주천강 가에 물들어가는 단풍과 묵직하게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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