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양산 금강둘레길에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 영동군 제공<br>
양산 금강둘레길에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 영동군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순덕] 코스모스 꽃을 흔드는 바람 속에 가을 냄새가 짙게 묻어오는 날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의 꽃길이 마음자리에서 마중을 나온다. 가을이 번진 하늘에 고추잠자리가 뱅뱅 돌고 있던 어느 날, 겁 많은 나를 위해 아버지 대신 오빠가 자전거 뒤꽁무니를 잡아 주며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오빠처럼 한쪽 발로 페달을 살짝 굴리다 가속이 붙으려는 찰나 살며시 반대쪽 다리를 치켜들며 올라타면 된다고 하였지만, 갑자기 다리가 길어지거나 자전거의 키가 작아지지 않는 한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오빠 절대로 손을 놓으면 안 돼 알았지? 절대로" 자전거 뒤를 잡아주는 손을 놓지 않겠다는 오빠의 다짐을 확인하고 페달을 밟았다. 달리면서도 입에서는 연신 뒤에 있는 오빠의 목소리를 다급하게 부르며 확인해야 안심이 됐다.

짧은 다리에 비해 안장이 높은 짐자전거가 넘어지면 작은 나를 사정없이 짓누를 것 같은 공포심이 엄습하였기 때문이다. 겁을 먹고 멈칫거리는 나를 위해 오빠는 잘 넘어지는 시범까지 보여주며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 주었지만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짧은 다리로 페달을 돌리기까지 엉덩이를 이쪽저쪽으로 심하게 움직이며 간신히 앞으로 나아갈 즈음. "잘 탄다"

바로 뒤에서 들려야 할 오빠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멀리서 들렸다. 놀라고 당황하여 뒤를 돌아보는 순간 몸의 균형을 잃은 나와 자전거는 논두렁 깊숙이 패대기를 당했다. 자전거의 무게와 초등학교 5학년 계집아이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서너 번 만에 손을 놓아버린 오빠의 배신이 서러워 엉엉 울었다. 멋쩍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오빠는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코스모스 물결이 치는 비포장 신작로를 달려주었다.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 물결은 한들한들 몸을 흔들고 자전거 뒷바퀴에 묻어오는 먼지 냄새와 싫지 않은 오빠의 땀 내음을 실은 자전거는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황금 들판에 내려앉은 햇살과 가로수 그늘까지 밀어내며 달려가는 자전거 위에서 바라본 하늘의 흰 구름이 마치 솜사탕 같았다.

자전거는 넘어지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오빠의 위로는 결국 나의 두려움을 설득하지 못했다.

나는 자전거를 배울 때 누구나 겪는 그 아픔 대신 내 마음속에 추억의 자전거로 세워둔 채 뒤에 앉아 타고 가는 편안함을 선택하였다. 가끔은 자전거 타는 뒷모습이 유난히 예쁜 친구를 바라볼 때마다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될 때도 있다. 그러나 부러운 마음만 있을 뿐 자전거를 다시 배우겠다는 마음은 딱히 들지 않는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은 연인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연인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는 모습이라든지 가을 코스모스 꽃물결이 치는 길에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때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옛날 오빠와 나의 모습도 그러하였을까......

아버지들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 중의 하나가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뺀 아이가 아빠가 잡아주는 손을 벗어나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그 순간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는 오빠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였지만 가을이 되고 코스모스 꽃이 피면 내 마음속에 세워둔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추억의 꽃길을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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