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로드에서 희망을 품다
블루로드에서 희망을 품다
  • 중부매일
  • 승인 2018.10.1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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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시리도록 파란 하늘빛과 어우러진 푸른 바다가 방글방글 웃으며 다가온다. 비릿한 바닷냄새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바다와 숲과 하늘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 여유와 운치를 더해준다.

충청북도교육청 걷기 동호회 워크홀릭에서 해파랑길 21코스(블루로드 B 코스)를 걷기로 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 거리 770㎞의 걷기 길이다.

해파랑길 21코스는 숲길과 바닷길이 함께 공존하는 블루로드로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오브해변, 죽도산 전망대, 축산항을 걷는 길로, 총12.8㎞이다. 몇 년 전 부산 갈맷길, 송정해변, 구룡포항에서 호미곶 등 해파랑길 일부를 남편과 다녀왔다. 그때 시원한 바닷바람과 아기자기한 자연석,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진 숲속 조붓한 오솔길에 매료되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떠올라 미소 지어진다.

해맞이공원에서 바닷가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작은 산을 하나 넘으며, 해파랑길 21코스 대장정에 올랐다. 블루로드 B 코스는 블루로드 가운데 가장 많은 바닷길로 '환상의 바닷길'이자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로 알려져 있다. 파도 소리를 친구삼아 숲속도 지나고 갈대숲도 지나 힘이 들 즈음 휴식할 수 있는 정자가 반긴다.

마침, 먼저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횡재한 기분으로 둘러앉았다. 총무가 준비한 정갈하고 품격 있는 간식이 나오자 지나가는 사람들도 놀란다. 정성 들여 깎은 과일부터 견과류, 육포, 치즈 등 어찌나 다양하고 푸짐한지 찬합 하나하나 개봉할 적마다 탄성이 나온다. 회원들은 몸만 오면 되니 부담이 없지만, 총무는 새벽부터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마음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영양 만점인 간식과 맑은 공기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걸음이 늦은 대여섯 명이 먼저 길을 재촉했다. 기암괴석과 바다, 하늘과 조붓한 오솔길이 참으로 낭만적이다. 하지만, 자연석을 이용한 계단 높이가 불규칙해 디스크 환자인 내겐 무리이다. 높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통증이 심해 부지런히 뒤따랐지만, 뒤처져 일행을 놓쳤다.

쫓아가려고 있는 힘을 다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후진에 많은 사람이 있어 안심은 되었으나, 초행길에 오롯이 혼자가 되니 당혹스럽다. 타박타박 가다 보니 항구가 나오고 대로변으로 접어들었다. 바닷가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물어볼 사람조차 없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니 멀찍이 한 사람이 보인다. 반가움에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걷는 발걸음이 사뿐사뿐해진다. 바닷길 들어가는 입구에서 고맙게도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셋이 되니 든든했다.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호젓한 외길이 끝도 없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지는 수려한 길을 걷는 기쁨 뉘 알까. 풍류를 즐기듯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보니 눈부시게 하얗게 핀 들꽃이 향기를 발산하며, 코끝을 간질인다. 처음 보는 꽃이라 핸드폰으로 꽃 이름을 검색해보니 으아리로 나온다. 자세히 보니 집에서 기르는 으아리보다 잎은 작아도 비슷하고, 향기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진해 그동안 흘린 땀을 식혀준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눈길을 끈다. 낚시는 할 줄 모르나 요즈음 즐겨 보는 TV프로가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 어부」 인지라 매우 반가웠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지만, 일행보다 걸음이 늦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루하지 않게 숲길과 바닷길이 적당히 교차하도록 조성된 블루로드, 바다와 숲, 기암괴석을 만날 수 있으니 참으로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다. 곳곳의 숨은 풍광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칼로리의 간식을 먹었음에도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니 허기가 느껴질 때, 하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같은 까마득한 계단이 보인다. 가풀막진 계단을 올려다보는 순간 다리 힘이 풀리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 올라야 할지 난감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앞서갔던 일행이 내려다보며, 그 계단만 오르면 다 온 것이니 천천히 올라오란다. 용기를 내어 간신히 오르고 나니 선두그룹이라며 박수로 환영한다. 나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지 않은 것으로 족한데 기쁨이 배가 되었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워크홀릭 걷기 때마다 후배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고난도이거나 눈비가 오면 망설이다 일 년 동안이나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을 했고, 버스 안에서도 일행들의 절반만 걸어야지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좋은 성적으로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멋진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사람들, 푸른 바다, 파란 하늘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바람과 어우러져 걸었던 영덕 블루로드!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깨어나고,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처럼 건강과 행복이 솟아오르는 듯하다. 더는 위축 들지 말고, 삶을 즐기는 여유와 당당함으로 걷기 길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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