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19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며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05.10. / 뉴시스
19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며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05.10. / 뉴시스

유력한 정치인의 메시지는 힘이 세다. 감동적인 연설 속에 담긴 강력하고 간결한 메시지는 대중들의 머릿속 에 각인돼 오래도록 회자(膾炙)된다. 에이브러험 링컨이 1863년 펜실베이니아주 케티스버그에서 강조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무너질 수 없다"는 대목은 3분여의 짧은 연설을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한 연설문으로 만들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야한다"는 존 F 케네디의 취임사도 애국심을 고취시킨 유명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 전쟁을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라고 외친 윈스턴 처칠의 명연설은 2차 세계대전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일 년 전 취임식에서 멋진 연설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말도 현실을 반영했다면 느낌이 다르다. 'T.P.O'라는 말이 있다. 때(Time) 장소(Place), 상황(occasidn)에 따라 그에 걸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지만 문 대통령 취임사 역시 시대 요청에 부응하는 시의적절한 메시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SNS에 '능력 없으면 너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로 젊은이들의 감정에 불을 지른 최순실 딸 정유라는 최순실 게이트의 기폭제가 됐다. '금수저·흙수저'가 우리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문 대통령 취임사는 톡 쏘는 사이다 같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걷어차이면서 우리사회는 점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인의 노력 부족도 있지만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 현상이 그만큼 고착화 됐기 때문이다. 2년 전 서울대 재정학연구에 실린 '한국의 소득기회불평등에 대한 연구' 논문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의 차이가 얼마나 극복하기 힘든지 설명하고 있다. 기회불평등은 주로 부모의 학력이 낮고 직업이 저 숙련 일 때 집중됐다. 당연히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워졌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저'(주어진 환경)가 중요한 요인이 됐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를 내세웠으니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은 훨씬 더 크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엔 진정성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럴듯하게 포장만 했을 뿐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기회는 불평등해졌으며 과정은 불공정해졌고 외려 부정이 판을 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멍석을 깔아준 인천공항공사는 물론 서울교통공사, 한국국토정보공사도 친인척 '고용세습'으로 화답을 했다. 뿐만 아니라 항만공사는 정부의 예산지침도 어기고 23개월 일한 직원에게 억대의 명예퇴직금을 지급했다. 어디 이곳뿐일까. 맘먹고 들춰내자면 다른 공기업도 고용세습과 '돈 잔치'가 고구마줄기처럼 엮여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있다'는 서양속담처럼 현실은 좋은 의도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연간취업자 증가폭을 18만 명에서 9만 명으로 낮춰 잡았다. 청년실업률은 10% 안팎이다.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생을 포함하면 청년실업률은 사상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지난 1년 새 MB정부의 4대강 예산이 초라해 보일만큼 엄청난 54조원을 쏟아 부었는데도 이 지경이 됐다. 이들 공기업조차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있지만 차기 대권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감싸고 있다. "정의와 공정, 평등이라는 단어를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비리 종합세트"라는 야당 비판이 틀리지 않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안희정 전충남지사와 공방을 벌이면서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일침(一針)을 놓았다. 문 대통령이 아직도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남아 있다면 청년들의 일자리를 도둑질하는 공기업의 부패와 노조의 적폐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말을 쓸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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