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줄과 까마귀 / 조혜경

까마귀들이 앉아있다
바다 속 미역처럼

할머니가 돌을 던져 쫓아내던 까마귀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
전깃줄 축 늘어지도록
일렬로 주욱

쫓아내던 악령(惡靈)처럼
질긴 고무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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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시인.

이 난감한 시를 어떻게 하나. 시인은 전기 불빛 아래서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창밖을 바라보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밤은 까마귀색처럼 까맣다. 어둠을 뚫고 전깃줄을 타고 '돌을 던져 쫓아'내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 선명하게, 까맣게 옛날의 불빛은 당도한다. 이런 나의 짐작이 틀리면 좀 어떤가. 그것은 오로지 까마귀의 일인데. 그 기억은 '바다 속 미역처럼' 지금도 역동적으로 숨이 막히게 살아 움직인다. 악령 같은 어둠과 불빛의 이미지가 지우개처럼 선명하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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