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중·장년층들의 지난 어려웠던 유년기 시절에는 이렇다 할 장난감이나 놀이공간이 없어 신작로에서 또는 동네 골목이나 마당의 맨 땅에서 고만 고만한 형제들이나 코흘리개 동네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자치기나 구슬치기 또는 딱지치기, 기차타기 놀이등을 하며 자랐다.
 맨 땅에서 서로 몸을 부딪치며 놀이를 하다보면 이해가 엇갈리게 된다. 자치기를 하다가는 내가 더 멀리 나갔다고 우기는가 하면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하다가 ‘따고 잃는’과정에서 싸움을 하기 일쑤였다.
 그 당시 악동들은 동네 신작로에서 또는 골목에서 조금전까지 잘 놀다가도 마음이 상하면 서로 붙잡고 넘어지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굴을 때리며 싸우다가 어느쪽이든 ‘코피’가 나면 싸움에서 지는 것으로 알았다.
 이러한 악동들의 싸움이 때론 ‘우리애는 잘못이 없다. 저녀석이 먼저 우리애를 때렸다’는 부모들의 큰소리에 이어 욕지거리를 하는 말다툼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늘상 싸움이나 다툼의 끝은 언제나 한동네의 이웃사촌으로서 뒷끝이 없는 화해로 이어져 곧 코피를 닦고 또 놀기도 했다.
 그래서 그 때는 ‘싸우면서 큰다’고 했다.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던 광고카피도 있었듯, 어린시절에는 호연지기를 기르며 자라야 한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어린 아이들은 물론 청소년들이 어른들이나 할 법한 욕들을 서슴없이 내뱉는가 하면 또래 친구들에게 ‘너 죽고 싶어’‘피 한번 볼래’라는 섬뜩한 폭력적 언어에 이어 폭력이 마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요즘 중·고등학교의 폭력서클인 ‘일진회’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나일강의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오래전 발굴된 어느 문자 석판을 어렵게 해독 했더니 “젊은이들이여, 너는 그다지 자만하고 네 멋대로만 하긴가”라고 젊은이들을 원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 소크라테스도 당시 희랍의 젊은이들을 두고 “요즘 젊은이들은 무례하고 난폭하여 이들이 어른이 되면 이 세상이 어떻게될지 생각하기만 해도 두렵다”고 했다고 한다.
 고려 말년, 개성의 수정봉에서 밤나들이를 하는 부녀자들이 작당한 악소배들에 의해 겁탈을 당하거나 약탈을 당하기 일쑤여서 이들을 잡아 들이고 보니 당시 세도가의 자식들이 이었다고 한다.
 청소년의 횡포와 그 횡포에 대한 사회적 절망이나 개탄은 동서고금이 다를게 없는 듯하다.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은 물론 우리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온갖 폭력’의 똥덩어리를 치우기 위해서는 우리모두가 똥통을 메고 다니며 폭력의 똥을 치우는 ‘똥통쟁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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