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출신 천재시인 오장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보은 출신 천재시인 오장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 송창희 기자
  • 승인 2018.10.22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톡톡톡] '빛나는 시대정신'과 '미래향한 희망의 문학'재조명
서정주·이용악과 함께 '3대 천재시인'평가
보은대추축제와 연계 품격 높이고 홍보 효과
지난 18일 보은 회인면 오장환문학관에서 열린 추모 혼맞이. 100년의 걸음으로 오소서로 진행된 이날 추모 혼맞이는 비나리, 길닦음, 해후, 살풀이, 가소서, 100년의 흥 순으로 진행됐다.<br>
지난 18일 보은 회인면 오장환문학관에서 열린 추모 혼맞이. 100년의 걸음으로 오소서로 진행된 이날 추모 혼맞이는 비나리, 길닦음, 해후, 살풀이, 가소서, 100년의 흥 순으로 진행됐다.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 일명 '사잣골'에서 출생한 오장환(1918~1951) 시인. 그는 1930년대부터 해방을 거쳐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격동기에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시인이다. 특히 올해는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3대 천재시인으로 불리었던 오장환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따라 보은군과 보은문화원은 제23회 오장환 문학제를 2018보은대추축제의 연계행사로 지난 18, 19일 이틀간 보은 회인면에 위치한 오장환 문학관과 보은대추축제 주행사장인 뱃들공원에서 다채롭게 진행했다. 매년 가을에 문학제를 개최해 올해로 23회를 맞은 오장환 문학제가 보은의 대표축제인 보은대추축제의 연계행사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보은대추축제는 문학행사를 함께 선보이며 축제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또 오장환 문학제는 오장환 시인과 작품세계를 축제장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커다란 홍보효과를 거뒀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이틀간 펼쳐진 이번 '오장환 시인 탄생 100주년 행사'는 비운의 역사 속에서도 항상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고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며 희망적인 미래를 갈망했던 그의 짧았던 삶과 문학, 그리고 그의 시정신 세계를 재조명했다. 특히 그는 일제말기 단 한편의 친일시를 쓰지 않았고 200자 원고지 72매 628행의 장시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와 전쟁이 주는 비참한 현실에 대한 빛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 천재시인 오장환의 삶과 문학

오장환 시인

시인 오장환은 1918년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에서 4남4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돌멩이'라는 별명을 가진 어린 시절 오장환은 회인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경기도 안성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해 그 곳에서 졸업했다.

1931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오장환은 정지용 시인을 만나 시를 배우게 되고 문예반 활동을 하게 되며 1933년 교지 '휘문' 에 첫 작품인 '아침'과 '화염'을 싣게 된다. 그때가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이후 오장환은 '시인부락', '낭만', '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으며, 이때 발표한 시집 '성벽'과 '헌사'를 통해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왔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신장병으로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한 오장환은 시 '병든 서울'을 통해 해방의 기쁨을 감격적으로 노래했으며, 이 작품은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대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한 시 '석탑의 노래'가 1947년 중학교 5, 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한다. 그러나 오장환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탄압과 테러가 자행되면서 몸을 심하게 다쳐 치료할 곳을 찾아 북한 남포와 소련으로 가게 되고, 소련기행시집 '붉은 기'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34살의 나이에 지병인 신장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보은 회인면 오장환 생가.<br>
보은 회인면 오장환 생가.

이렇게 비운의 삶을 산 오장환 시인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8년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루어지면서부터다. 이후 천재시인 오장환에 대한 연구논문을 비롯해 전집, 평론, 시집 등이 발간 되었고, 1996년에는 제1회 오장환 문학제가 개최되어 현재까지 매년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2006년 보은 회인면에 생가 복원과 문학관이 건립 됐으며 2008년에는 제1회 오장환 문학상이 제정돼 올해까지 11번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 전국 각지에서 문학인 몰려

지난 19일 '민중문학의 대부' 김준태 시인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에 전국 각지 문학인 1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참자자들은 오장환 문학관, 선병옥 가옥, 법주사, 말티재를 둘러본 후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오장환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의미를 더한 이번 제23회 오장환 문학제는 18일 오장환 문학관에서 열린 '추모 혼맞이-100년의 걸음으로 오소서'를 시작으로 19일 김준태 시인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 저명 작가와의 만남, 판소리 마당극, 오장환 문학상·신인문학상·디카시 신인문학상 시상식 등이 열렸다.

'민중문학의 대부'로 불리는 김준태(70) 시인의 문학기행에는 서울, 대전, 여수, 순천, 광주 , 창원, 고성 등 전국 각지의 문학인 100여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호남지역 문학인들이 대거 참가해 등 문학적인 교류의 물꼬를 트는 단초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저명작가와의 만남의 장에는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한국문단의 저명시인 이산하, 박지웅, 기상호, 신현림 씨가 초대돼 문학제다운 취지와 분위기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이날 처음 선보인 판소리 마당극 '나요, 오장환이요'는 보은 출신 소설가 윤이주 대본, 국악인 조동언의 작창으로 무대에 올려졌으며, 오 시인의 창작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20대를 집중 조명했다. 작창을 맡은 조동언 씨는 "오장환 선생님의 짧은 인생을 어떻게 소리로 잘 표현해 낼까를 가장 고민했다"며 "우리지역 소리인 중고제 판소리로 정체성을 살리면서 젊은 예술가들을 대거 기용해 치열했던 선생의 일대기를 재현해 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34세의 짧은 삶을 살다가 천재시인 오장환의 일대기를 그린 판소리 마당극 '나요, 오장환이요'가 소설가 윤이주 대본, 국악인 조동언 작창으로 19일 뱃들공원 무대에 올려져 눈길을 끌었다.
34세의 짧은 삶을 살다가 천재시인 오장환의 일대기를 그린 판소리 마당극 '나요, 오장환이요'가 소설가 윤이주 대본, 국악인 조동언 작창으로 19일 뱃들공원 무대에 올려져 눈길을 끌었다.

이번 작품에는 판소리 4명, 무용 4명, 연기 4명이 참여했으며, 보은 삼산초 어린이합창단, 충주오페라합창단, 에루화어린이민요합창단 100명이 함께 오 시인의 대표 작품인 '나의 노래'를 불러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김록수 보은문학회장이 애달픈 어머니의 목소리로 "아가야, 어서 오너라"를 읊으며 마당극의 대미를 장식해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제11회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인 이근화 시인, 신인문학상 신성률 씨, 디카시 신인문학상 강영식 씨에 대한 시상식이 열렸으며, 보은대추축제장인 뱃들공원에 마련된 오장환 시인 특별전시관에는 문학관, 시그림 전시, 시 탁본 증정, 시집 판매, 편지쓰기 부스가 마련돼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보은 출신 천재시인 오장환의 일대기를 알렸다.


#헤매돌던 혼 품에 다시 안은 고향

이처럼 이번 오장환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는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 아따름 솔나무숲이 있으나 / 그것은 /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라고 시 '붉은 산'을 통해 어린시절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한 오장환을 보은의 고향사람들은 "오랫동안 북에서도 남에서도 잊히었던 회인사람 오장환, 남으로 북으로 헤매돌던 시인의 혼령이 마침내 저 정들고 살길로 들어서는구나. 태어난지 꼭 백년만이로다. 어서 오너라,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어서 오너라! 손 한번 잡아보자. 우리 돌멩이. 잘 왔다(판소리 마당극 내용 中)"라며 다시 맞이했다.  
 


■ 오장환 대표 시


나의 노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 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아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여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여

단 한 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 시인 오장환 연보

▶1918년(1세) = 5월 15일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 출생
▶1924년(7세) = 회인공립보통학교 입학 3학년까지 다님
▶1927년(10세) =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서리로 이사. 안성공립보통학교 전학
▶1930년(13세) = 안성공립보통학교 졸업
▶1931년(14세) = 중동학교 속성과 수료, 휘문고등보통학교 입학. 정지용에게 시 배움
▶1933년(16세) = 학교문예지 휘문 임시호에 '아침', '화염' 발표, '조선' 문학지에 '목욕간' 발표
▶1935년(18세) = 동경 유학 사유로 자퇴, 일본 지산중학교에 전입학
▶1936년(19세) = 지산중학교 수료. '시인부락', '낭만' 동인으로 참가, 첫 시집 '성벽'(풍림사) 100부 한정판 자비 출판
▶1938년(21세) = 명치대학 중퇴후 귀국. 아버지 오학근 사망.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남만서방' 개업
▶1939년(22세) = 두 번째 시집 '헌사'(남만서방) 간행
▶1945년(28세) = 신장병으로 입원 중 광복을 맞음
▶1946년(29세) =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 번역시집 '에세닌시집'(동향사) 간행. 세 번째 시집 '병든 서울'(정음사) 간행. 6편의 시 추가 '성벽' 재판(아문각) 간행. 시집 '병든 서울'로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대상 후보에 오름
▶1947년(30세) = 장정인과 결혼. 네 번째 시집 '나 사는 곳'(헌문사) 간행. 중학교 5, 6학년용 국어교과서에 시 '석탑의 노래' 실림
▶1948년(31세) = 1947년 10월에서 1948년 2월로 추정되는 시기에 북으로 탈출해 남포병원에 입원. 산문집 '남조선의 문학예술' 간행. 병 치료위해 모스크바로 가 볼킨병원에 입원
▶1949년(32세) = 모스크바를 떠나 귀국
▶1950년(33세) = 마지막 시집에 해당하는 소련기행시집 '붉은 기' 간행
▶1951년(34세) = 지병인 신장병으로 사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