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과 절 지나 뱃나들이 하던 곳으로 유유히 흘러
사당과 절 지나 뱃나들이 하던 곳으로 유유히 흘러
  • 중부매일
  • 승인 2018.10.24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래강123리포트] 18. 단월동과 용관동
달래수, 전국 최고 수준 꼽혀…충북선 철도 개통 후 쇠퇴
임경업 장군 기리는 충렬사…고려시대 철불 단호사 유명
뱃나들이에서 바라 본 달래강.

#달래강물을 상수원수로 사용하는 이유는

단월동에 있는 충주시 상수도사업소는 두 개의 정수장을 운영한다. 77년에 만들어진 단월 제1정수장는 3만5천t의 시설용량을 가지고 있다. 87년에 만들어진 단월 제2정수장은 2만t의 시설용량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정수장에서 충주시는 5만t의 수돗물을 생산하고 있다. 아직 5천t의 여유가 있지만, 인구증가에 대비 조만간 시설용량을 늘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단월정수장에서 만드는 달래수는 수질에 있어서 전국 최고수준이다. 세균과 대장균으로 대표되는 미생물은 검출된 적이 없다. 건강에 해를 끼치는 무기물질 중 질산성질소가 ℓ당 1.8㎎이 검출되지만, 기준인 10㎎/ℓ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건강상 유해한 유기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소독제인 유기잔류염소의 양도 평균 0.8㎎/ℓ로 기준인 4㎎/ℓ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충주시에서는 월 1회 이상 수질을 체크하고 1년치를 합산해, 다음 해 수돗물 품질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홍수기인 여름 한철을 제외하고는 달래강 물은 1급수를 유지하지 못한다. 봄철과 겨울철 갈수기에는 수질이 2급수로 떨어진다. 원수의 수질이 좋아야 수돗물이 맑고 깨끗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달래강의 수질 관리는 속리산에서 탄금대에 이르는 달래강 지역 주민들의 과제 중 과제다. 더러운 물을 만들면 더러운 물을 먹을 수 밖에 없다. 달래수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충렬사(忠烈祠)와 단호사(丹湖寺)

충렬사.

충렬사와 단호사는 단월동에 있다. 충렬사는 임경업장군을 기리는 사당이고, 단호사는 고려시대 철불이 있는 절이다. 충렬사는 달래강에서 북쪽으로 300m쯤 떨어진 산자락에 위치한다. 충렬사에는 사당, 강당, 유물전시관의 3개 건물이 있고, 2개의 비석과 비각(碑閣)이 있다. 강당과 비각은 외삼문을 통해 들어가고, 사당은 내삼문을 통해 들어간다.

충렬사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중건된 것은 1978년 12월 성역화사업을 통해서다. 그러나 충렬사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그보다 10년쯤 전인 1969년 11월이다. 이때 충렬사가 국가사적으로 지정된다. 1975년 10월에는 유림이 중심이 되어 충렬사 중건에 착수했고 1977년 4월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12월에 충민공 기념사업회 발의로 성역화사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인 1978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사당에는 임경업장군 유상(遺像)이 봉안되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임경업장군 연보, 충렬사와 충렬사강당 편액 진본, 비문 탁본, 임장군 유필, 추련도(秋蓮刀), 교지, 고지도, 목판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추련도가 충북 유형문화재 제300호다. 추련도는 임장군이 사용한 지휘용 칼이다. 이 칼에는 임경업 장군의 기개와 의지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때여, 때는 오나 또 다시 오지 않나니(時乎時來不再來)
한번 나서 한번 죽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도다.(一生一死都在筵)
평생동안 장부로서 나라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平生丈夫報國心)
삼척(1m) 추련검을 십년 동안 갈았도다(三尺秋蓮磨十年)

 

 

그리고 1791년(정조 15) 정조가 직접 비문을 지어내린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 충북 유형문화재 제272호)가 있다. 정조는 어제달천충렬사비에서 임경업 장군의 절의와 기량(氣量)을 찬양하고 있다. 비문 글씨는 예조판서 이병모(李秉模)가 썼다.

단호사에는 고려시대 철불(보물 제512호)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높이 130㎝의 철불로 고려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검은색깔이어서 중후하고 근엄한 느낌이 든다. 올라간 눈꼬리, 지나치게 깊게 표현된 인중, 입주변의 들어감 등으로 인해 상호가 우울하게 보여진다. 미학적인 측면에서의 아름다움보다는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엄숙함을 강조한 것 같다.

충주에는 보물로 지정된 두 기의 철불(대원사, 백운암)이 더 있다. 이처럼 충주에 철불이 많은 것은 충주지역이 철산지이고, 철을 제련해 철기를 만드는 야금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단호사에는 철불 외에 삼층석탑(충북 유형문화재 제69호)이 있고, 보호수로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단호사는 달래강가에 있는 사찰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서호정 옛터에 지어진 관월정 이야기

관월정.

단월교를 지난 달래강은 가주와 신대마을을 지나 관산마을로 내려간다. 그런데 관산마을에 이르기 전에 달래강은 서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러므로 홍수가 질 때 관산마을 쪽으로 크게 호수가 생기곤 한다. 또 강에는 모래톱이 쌓여 몇 개의 섬이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 지역을 서호(西湖)라 부르곤 했다.

이곳 서호에는 배가 드나드는 서호정 나루가 있었다. 서호정은 관산(觀山)마을 앞 서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던 정자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현재는 서호정을 대신해 관월정(觀月亭)이 들어서 있다. 관월정은 용관동의 관자와 단월동의 월자를 따서 1972년 용관동 산 19번지에 처음 세워졌다. 그리고 1990년 도로가 확장되면서 산 18-2로 이전되었다.

서호정 나루 앞 달천강변에는 뱃나들이가 있었다. 이곳이 나루터로 평상시에는 관음사 앞이 뱃나들이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여름에 장마가 지면 물이 불어 관월정 아래 한국농어촌공사 달천양수장 앞까지 뱃나들이가 내려갔다고 한다. 뱃나들이가 있는 이 마을의 이름은 벌미 또는 관산이다. 이곳에 사는 김영기(86)씨에 의하면 볼뫼를 한자로 표기해 관산이 되었고, 볼뫼가 발음상 벌미로 변했다고 한다.

이곳 벌미는 장사배가 드나들며 상업적으로 번창한 포구가 되었다. 그 바람에 마을 앞에 객주집이 생기고 뱃사람과 주모가 눈이 맞는 일도 벌어졌다. 풍기가 문란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비보 차원에서 남근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충북선 철도가 개통되고, 충주에서 목도에 이르는 달천강 뱃길이 끊기면서 서호정 나루도 쇠퇴하게 되었다.

#관산 아래 두담마을 이야기

관산마을 표지석.

두담(斗潭)은 관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홍수가 질 때 큰못이 생겨 두무소 또는 용소라 불렸다. 두담 북쪽에는 용두원(龍頭院)이 있었다고 한다. 용관동이란 법정리명도 용두와 관산에서 한자씩 따 만들어졌다. 이곳 두담마을에는 한남군(漢南君) 사당이 있다. 한남군 이어(1429∼1459)는 세종과 혜빈양씨(惠嬪楊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경남 함양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한남군 사당이 이곳 두담마을에 있는 것은 한남군 증손 이헌경(李獻慶)이 충주로 낙향했기 때문이다. 사당이 처음 세워진 것은 순조 때인 1801년으로 추정된다. 현 위치에 사당이 세워진 것은 1933년이고, 현재 건물은 1998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로 중수되었다. 한남군 사당 옆에는 혜빈양씨를 모신 흥안당(興安堂) 이 있다. /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