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충북도청 앞에서 열린 촛불행렬 / 중부매일 DB
충북도청 앞에서 열린 촛불행렬 / 중부매일 DB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일부 고위 사법관료들이 정권 핵심부와 재판거래를 하였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는 독립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법부와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인 법관들에 대한 신뢰를 그 근간부터 뒤흔드는, 우리 사법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민주주의와 정의, 공정성보다 자신들의 조직이익을 우선시하는 이러한 행태는, 얼핏 권력욕에 빠진 일부 고위 사법관료들의 예외적 일탈로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근간에는 본질적이고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사법부와 사법엘리트들의 모순과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국가권력에 입법(결정)과 행정(집행)이외에 사법을 추가한 것은 프랑스의 정치사회학자 몽테스키외이지만, 이를 처음 현실에서 제도적으로 실천한 것은 신생 미국이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왜 별도의 사법부를 만들고 의회나 정부와 다른 원리로 그것을 조직하고 운용하려 했을까? 물론 독재권력의 전횡을 예방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한 측면도 있었지만, 국가권력내에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관철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러한 의도를 정확히 꿰뚫은 사람은 몽테스키외 추종자로 같은 프랑스 정치사회학자인 토크빌이었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에서, 미국 건국자들은 非민주적으로 조직되고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고, 나아가 그 구성원 내부에 엘리트적 근성과 보수적 성향이 충만한 사법부에 막강한 권한(그들에게 단순한 권리구제를 넘어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대한 심사권과 행정적 분쟁에 대한 결정권까기 부여)을 주었는데, 이것이 신생 미국의 주요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결국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토크빌은 사법부 자체의 非민주적이고 엘리트(귀족)적이고 보수적인 정향을 통하여 시민들의 민주주의 열정을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얼핏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그 근간에는 反민주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제도는 비단 사법제도만이 아니다. 근대의 대의제도, 선거제도, 권력분립제도, 법치주의, 관료제도 등도 그렇다. 이들 제도는 시민들이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하지 못하게 막고, 사회경제적 지배계급과 그와 친화적인 엘리트들로 하여금 정치권력을 독점토록 하고, 서로간에 권력을 분산하고 통제토록 하여 시민들의 민주적 열정이 집중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또한 내포되어 있던 것이다.

현대 사법의 문제는 비단 이러한 非민주적 한계와 귀족적·엘리트적·보수적 편향성만이 아니다. 현대 사법에서 더욱 문제되는 것은 사법 자체의 관료주의와 조직 이기주의다. 플라톤으로부터 20세기의 슘페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사상가들은, 선출 엘리트나 행정 관료들이 탁월한 능력과 윤리로 공공의 이익에 봉사할 것이라고 간주해왔다. 그러나 역사적 실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의 저자인 로버트 달은, 정책 엘리트나 관료들은 공공의 이익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항상 자신들의 협소한 조직적·관료적 이익을 우선시해왔다고 규명한다. 이번 사법농단의 근간에도 이러한 조직 우선주의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많은 학자들은 현대는 태생부터 非민주적인 사법부가 모든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제왕적 사법부(Imperial judiciary)' 시대라고 말한다. 또한 사법부의 인력과 권한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 내부의 엘리트주의?관료주의? 보수주의는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거기서 한술 더 뜬다. 반성은커녕 터무니없는 사유로 사법농단을 향한 검찰의 영장을 지속적으로 기각하고 있다. 그들은 법정에 선 전제군주 찰스1세나 루이16세처럼 도도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재판할 수 없다. 재판은 나의 것이고 오직 나만이 너희를 재판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민주적 통제의 예외는 없다.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데, 사법부의 독립이라고 하여 민주적 통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사법의 민주화(시민 참여와 시민 통제)가 없는 한 사법농단은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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