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이야기] 김문영 청주 창리초 수석교사

김문영 청주 창리초 수석교사 제공.

아빠는 야구를 봅니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엄마는 어제 놓친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엄마 옆 자리에 앉은 딸은 좋아하는 유투브 방송을 보며 웃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일까요?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정답은 '어느 가족의 식탁풍경'입니다. 거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리모컨 쟁탈전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스마트 폰의 각종 앱을 통해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모컨 전쟁을 하던 때가 오히려 정겹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 리모컨에 의해 한 채널을 같이 보며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한 식탁에서 마주하는 가족들 간에도 진정한 소통과 대화가 없어졌습니다. 너무나 편리한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외로워집니다.

어른들만 외로운 것은 아닌 가 봅니다. 예전에 우리 어릴 때는 하교 후에 한바탕 이어지는 놀이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자연스레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 방법을 체득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이 서툰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자기표현을 하면서 교실에는 자주 문제가 생깁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학교가 선생님과 제자사이 그리고 친구와 친구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배우고 마음 편히 활동하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편하려면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이 되려면 나도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과 긍지가 필요합니다. 내 목소리와 친구들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어우러지는 공간. 교실은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수업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학습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진단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달리기를 할 때 출발점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배웠나, 배운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자는 먼저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마음날씨'입니다.

방법은 교사가 출석을 부르듯이 자기 이름을 부르면 학생이 '맑음' 또는 '흐림' 등의 날씨로 자기의 마음상태를 표현합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발전해서 '태풍', '천둥번개', '무지개' 등 자기의 기분을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한 친구가 말하면 듣고 있던 다른 친구들은 박수를 두 번 쳐줍니다. 이때 치는 박수의 의미는 "친구야, 지금 너의 기분이 그렇구나, 알겠어~"라는 뜻입니다.

학교에 와서 하루 종일 한 번도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집에 가던 아이도 이 시간엔 말합니다. 친구들이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큰 박수로 공감해줍니다. 그럴 때 그 아이의 눈은 빛납니다. 가끔은 교사의 직감으로 평소와 다른 날씨를 말하는 친구에게 이유를 묻기도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께 혼나고 왔어요." 라든지 "아침을 못 먹고 와서 힘이 없어요" 라든지 그 아이의 상태를 헤아릴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의 마음 상태를 파악한 뒤 "얘들아, 지금 ○○가 마음이 ○○라는데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까?" 라고 물으면 "괜찮냐고 물어봐줘요, 친절하게 대해줘요" 등등 의 대답이 나옵니다. 친구들의 이런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자기의 기분만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살피는 데는 너무나 서툰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날마다 먹는 집 밥처럼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이 순서를 아이들은 기다립니다.

김문영 청주 창리초 수석교사.

어쩌다 준비한 수업내용이 좀 많은 듯해서 '마음날씨' 순서를 건너뛰려고 하면 아이들은 '마음날씨' 왜 안 해요? 하면 안돼요? 하며 보챕니다. 자기를 표현하고 친구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기 말에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한 도덕수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에 여러 가지 답변이 있지만 '마음날씨' 한 게 좋았어요. 라는 대답이 종종 나옵니다.

오늘도 이어지는 '마음날씨', 서로를 표현하고 공감을 주고받는 따뜻한 교실에 한걸음 다가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당신의 마음 날씨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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