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와 무심천
직지와 무심천
  • 중부매일
  • 승인 2018.10.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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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도올 선생. / 청주직지코리아 조직위

사람이 살다보면 눈에 번쩍 띄는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바로 도올 선생이 청주에 온다는 신문 기사였다. 2018.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도올, 직지를 말하다'라는 특별 강연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방청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매불망, 내가 도올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주저할 것도 없이 바로 방청 신청을 했다.

도올 선생의 강의는 지금도 유튜브로 듣고 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에 특이한 말투, 제스처 등이 사람을 사로잡는다. 공중파 방송에서 논어, 금강경, 도덕경 등 동양 고전을 원전에 근거해 알기 쉽게 강의하는 것을 거의 빠지지 않고 들었었다. 어려운 철학이나 종교적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해석해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토해낸다. 그 알토란같은 심오한 지식을 안방에서 거저 얻으니 나로서는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도올 선생은 직지의 도시, 청주에 '직지'를 알리러 왔다. 이런 강연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직지가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알지만, 직지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는 잘 모른다. 도올 선생은 바로 직지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금속활자까지 만들어 인쇄를 했을까 하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했다.

직지의 저자는 고려 말기 백운화상이다. 금속활자로 만들었고, 이것은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42줄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다. 직지코드 영화에서는 구텐베르크가 고려의 직지 인쇄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고 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안다. 그러나 백운화상은 누구이고, 금속활자는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하고 물으면 막힌다. 거기다가 직지의 가르침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제자들은 금속활자까지 만들어 책을 보급하려 했을까 하고 깊이 들어가면 답답해진다.

도올 선생은 이러한 평소의 의문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열띤 강의는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고, MBC충북방송에서는 연 4회에 걸쳐 방영해 주었다. 현장에서 직접 들은 것을 방송으로 시청하니 공부가 더 잘 되었다. 자막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서 제시해 주고, 선사들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만화로 꾸며서 보여 주었다.

직지는 정말 위대하다. 우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기에 위대하고, 더 위대한 것은 그 내용이 한국 선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운화상은 고려 1351년 5월 17일, 54세의 나이로 중국 임제종의 제18대 법손으로 알려진 석옥청공을 찾는다. 그때 세 가지 질문을 하고는 좀 미흡했던지 이듬해에 다시 찾아가 묻는다. 그리고는 큰 깨달음을 얻어 1372년에 자신의 역작인 직지를 완성한다.

직지란 무엇인가? 본래 책 이름은 '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이다. 풀이하면, '백운이라는 큰스님이 선의 가르침 중에 요긴한 것들을 간추려서, 마음을 직접 가리켜 그 요체를 깨닫도록 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도올 선생은 초록했다고 하여 이전의 것들을 단순히 발췌했다고 하면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직지는 온전히 백운화상의 창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이전의 가르침을 탐독하고 치열한 수행을 한 끝에 얻어진 깨달음의 결과라는 것이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무엇이든 그냥 나오는 법은 없다. 뭐 하나 인용이라도 하려면 앞뒤를 다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공부인의 자세다.

직지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무심'이라고 했다. 아, 무심……. 무심이 무얼까. 청주에는 무심천이 있다. 그 특이한 이름, 무심천. 이건 어찌해서 나온 걸까. 일설에는 아이가 물을 건너다 떠내려갔는데 아무 일 없이 무심히 흐른다 하여 무심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강의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무심천은 직지의 가르침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백운화상은 깨달음에 대한 논쟁이 일자 이를 한마디 '무심'으로 일갈한다. 단박에 깨달음이 오는 것도 아니요, 단박에 수행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에 의하면 오로지 무심이 있을 뿐이다. 무심은 마음은 있으되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다.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마치 구름이 바람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듯이. 구름은 백운화상 자신이다. 백운은 죽기 전에 게송을 남긴다. "…… 내 몸은 본래 있지 않은 것이요, 내 맘 또한 머무는 것이 없으니 태우고 남은 한 줌 가루 훌훌 사방에 흩날려 시주하는 아낙들이 사놓은 땅 한 치라도 차지하지 말도록 해 주게나!"

정말 멋지다. 사람이 일평생 살다가 이런 깨달음의 노래 한 수 짓고 죽는 것도 괜찮겠다. 바로 이런 가르침이기에 대장경을 조각한 고려인은 금속활자까지 만들었나 보다. 고려는 정말 위대한 나라다.

직지를 생각하며 무심천을 걸어보았다. 가을바람에 갈대가 몸을 뒤척인다. 물은 말없이 흐르고 하늘엔 흰 구름 떠돈다. 손가락으로 구름 한 점 가리키니 그 구름 어디로 갔나 없다. 아, 이것도 무심인 것을….
 

 

최시선 수필가

약력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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