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메기. / 클립아트코리아
메기. / 클립아트코리아

스칸디나비아 반도 노르웨이 어부들은 정어리를 어선 가득 잡아도 고민이었다. 잡은 정어리들이 육지에 도착하면 죽거나 생기를 잃어 제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잡은 정어리는 수족관의 바닷물을 자주 갈아줘도, 산소를 충분히 공급해 줘도 소용이 없었다. 정어리의 활어 운송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어느 날 한 어부가 정어리를 온전하게 활어 상태로 싣고 왔다. 당연히 그 어부는 종전보다 수배의 값을 받고 팔아 수입을 크게 올렸다. 그 어부의 정어리는 바다에서 잡을 때보다 오히려 싱싱하고 식감도 더 좋았다고 소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활어운송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어부들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으나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운송 방법을 알기 위해 수족관을 확인하고 싶어도 수족관 옆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대체 비법이 무엇이었을까?

이 어부가 갑자기 죽었다. 다른 어부들이 기회다 싶어 수족관을 들여다보았다. 그들 모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정어리의 천적인 메기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그 메기는 정어리를 잡아먹기 위해 정어리를 뒤쫓고 있었다. 정어리들은 필사적으로 추격을 따돌리고 있었다. 마치 물고 물리는 싸움 같았다. 하지만 어떤 정어리도 메기의 공격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어리들은 바다 속에 있을 때보다 더 생기가 넘쳤다. 아니, 어째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메기가 정어리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른바 메기 효과(catfish effect)다. '천적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사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논리다. 메기 공격을 피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피해 다니다 보니 오히려 잠재된 생명력을 이끌어내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얘기다. 비록 그물에 걸려 사람들의 먹잇감이 될 운명이지만 살아 있을 때만이라도 살아보자는 강력한 삶의 의지 표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논리가 실행된다. 미꾸라지 수송의 경우다. 잡은 미꾸라지를 수족관에 넣고 장거리 운송하면 대부분 죽거나 신선도가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한다. 이때 미꾸라지의 천적인 메기가 한몫을 한다. 수족관에 메기를 집어넣는다. 죽을 운명에 빠져 생기를 잃은 미꾸라지에게 긴장감을 주어 삶의 활력과 동기를 찾아준다. 미꾸라지 양식장에 메기를 넣기도 한다. 실제로 미꾸라지와 메기의 어획량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훨씬 증가한다. 메기가 미꾸라지를 다 잡아먹을 것 같지만 오히려 서로 번식력이 커진다. 미꾸라지는 메기에게 당할 것을 감안해 개체수를 기존보다 더 늘리는 종족유지본능이 발현된다는 얘기다.

벼랑 끝 전술, 배수지진(背水之陣)이라고나 할까? 먹잇감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니 죽기 살기로 싸우거나 도망갈 수밖에 없다. 시쳇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이런 상황에서 천적과 먹잇감의 관계는 달라진다. 먹잇감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는 메기다. 사람들의 천적이다. 사회가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를 옥죄고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나? 모두 타인이나 사회구조의 시선은 나를 감시하는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이다. 도덕, 관습, 법 등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이 나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특히 디지털 문명은 갈수록 정신과 육체적 영역을 잠식해 가고 있다. 지식이라 하지만 일회성이거나 진실성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을 기만하는 지식이 판친다. 지혜로 승화될 지식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은 무한 경쟁에 시달리며 존재감을 잃고 무기력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마치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마구 휩쓸려가는 통나무 처지와 같다. 삶이 아주 좁은 공간으로 경계 지워져 '꼼짝 마라.'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이런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나를 옥죄고 있는 타인이나 사회' 때문이다. 타인과 사회가 경쟁, 간섭. 긴장, 갈등, 억압 등의 형태로 우리를 무차별 공격하지만 오히려 삶과 사회유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회는 우리를 보다 강하게 담금질한다. 정어리와 미꾸라지에게 하는 메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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