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세명대외래교수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가을은 우리를 사색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책상에 앉아 사색하다가 불현 듯 영국의 저널리스트였던 알프레드 G.가드너의 수필인 동승자 (A Fellow Traveler)가 생각이 났다. 퇴근길에 런던 교외로 향하는 막차를 탄 주인공은 다른 승객들이 다 내리고 텅빈 객차안에서 일어나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을 때 다른 동승객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것은 모기였다. 쫓아도 계속 귀찮게 달려드는 모기에게 화가난 주인공은 무임승차한 데다가 식권도 없이 덤빈다며 사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객차 내를 이리저리 쫓아다녔지만 허사였다. 꼭 노련한 투우사에 놀림당한 황소가 된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오면서 인간의 도덕적 존엄성으로 자비를 베풀어 사형선고를 취소한다 며 더 이상의 공격을 포기한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쳐들었을때 모기는 어리석게도 신문지 한복판에 내려와 앉았다. 신문을 탁 접기만 하면 일은 끝난다. 그러나 이제는 죽일 수가 없다. 사형은 이미 취소되었을뿐만 아니라 그것 또한 이제는 단순한 한 마리의 벌레가 아니라 자신처럼 삶을 구가하는 생명체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운명은 그들을 여름밤의 동승자로 만들어 주었다.

이 글은 단순한 내용이지만 우리주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가치와 신비로움까지 일깨워 주는 섬세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읽어볼수록 가슴이 저미어온다. 우리는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부터 동행자들과 함께한다.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목숨을 걸고 날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한 핏줄의 형제 자매, 나에게 인생을 걸고 살아주는 배우자, 갈길을 인도해 주는 스승, 마음이 통하는 친구, 직장동료 등 헤아릴수 없이 많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처럼 그 동반자들의 가치가 내 삶의 질과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무릇 행복을 만들려면 인생길을 동행하는 모든 사람의 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주변에는 언제부터인지 우발적인 범죄로 또는 건전한 가치관의 부재로 자신의 생명은 물론 남의 생명까지 빼앗아가는 횟수 또한 적지않음을 볼수 있다. 이 아픔은 개인을 넘어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이렇게 될 때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마련이다. 행복은 나 혼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고 역설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분명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무장하고 무엇보다도 주변사람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고 이기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가을이 익어 간다. 아쉬움이 날로 쌓여만 간다. 병풍처럼 둘러친 이 정겨운 가을의 진수를 나와 함께 하는 모든 동행자 분들과 마음껏 구가해야 되지않겠는가 말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