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창근 헤리티지큐레이션연구소 소장·서울문화투데이 편집위원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종묘제례악 야간공연

최근 문화재 분야에 경사스러운 소식이 있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인 씨름이 지난 10월 29일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로부터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곧 열리게 되는 제13차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등재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인류무형유산은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선정을 시작으로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를 비롯하여 제주해녀문화(2016년)까지 현재 19종목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인류무형유산 중 처음으로 선정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거행되는 종묘대제의 제례의식과 그 제례에 수반되는 음악과 무용이다. 종묘대제는 조선왕실의 국가제사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했던 의례로 현재는 매년 봄과 가을에 개최된다.

전통시대 새로운 국가의 건국은 이를 지탱해 줄 사회적 목표와 통치를 위한 이념이 요구되었다. 1392년 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건국된 후 국가통치를 위한 핵심가치는 '충과 효', '예와 악'이었다. 이러한 충과 효, 예와 악을 강조한 유교문화권에서 최고통치권자가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또 실천하던 공간이 바로 종묘였다. 즉, 종묘는 국왕이 그 조상을 섬기는 모습을 통해 '효'의 실천 의지를 백성에게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이는 '효'를 이루면 '충'이 되므로, 종묘의 궁극적인 의미는 국왕이 백성에게 효와 충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와 '악'은 종묘대제에서 제례를 행할 때 의례와 함께 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합의례인 종묘대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유산으로 여러 요소가 집대성된 총체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 유일의 살아있는 제례의식인 종묘대제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을 거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의해 이어졌으며,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2006년부터 국제문화행사로 격상시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열린다. 2006년 당시 주한외교사절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담당관과 해외언론인을 초청하여 우리의 문화적 우수성을 전 세계에 전했다. 또 일본, 중국, 미국 등 많은 외래 관광객이 종묘대제를 참관하는 관광상품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2007년 종묘대제에는 당시 청와대의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수행원 없이 혼자 조용히 참석하여 종묘대제의 의미를 함께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화정책 행보에서 문화재와 정신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매년 많은 내ㆍ외국인들이 우리의 인문정신문화가 결집된 종묘대제를 방문한다. 국제문화행사로 격상된 종묘대제를 2006년 당시 총괄기획했던 나정희 한국문화재재단 실장(겸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 사무국장)은 "종묘대제를 국제적인 문화행사로 격상시킴으로써, 무형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 실현은 물론 국가이미지 제고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고 의의를 회고했다.

이창근 문화기획자·예술경영학박사
이창근 헤리티지큐레이션연구소 소장·서울문화투데이 편집위원

현재와 미래는 콘텐트 경쟁의 시대다. 콘텐트의 원천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과 정신문화임에 틀림없다. 인문정신문화의 결정체인 종묘대제는 충과 효, 예와 악이 담겨있는 문화유산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많은 것들이 인공지능(AI)으로 가속화 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첨단화되는 시대에도 정신문화는 과학이 지배하지 못한다. 올해 가을 종묘대제는 11월 3일 토요일에 열린다고 한다. 필자 또한 과학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 오랜만에 종묘대제를 찾아 복잡한 머릿속의 상념을 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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