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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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다가 집주위의 노오란 단풍에 화들짝 놀랐다. 11월인데도 이렇게 단풍이 곱다니! 넓은 교회 경내에 집이 있다 보니 주변에 나무가 많다. 그 나무들이 지금 고운 단풍으로 단장하고 있다. 이미 잎을 다 떨어뜨린 은행나무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나무들은 그렇지 않다. 멋진 단풍으로 가을을 보여주고 있다. 10월에만 단풍이 있는 줄 알았다. 11월이면 모두 사라지는 줄 알았다. 휑해지고, 쓸쓸해지고 추워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아직 주변에 단풍이 아름답다. 날씨도 푸근하다. 오히려 시월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졌다가 이제 평상시의 기온을 되찾았다. 아직 시간이 많다. 해야 할 일이 많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다.

오래 전에 읽다가 서가 한켠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시집을 꺼내 읽는다. 11월을 맞은 이후, 몇 년 전 사두었던 영작문 책을 꺼내서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연초에 시작하다 말았던 기초 히브리어 책도 다시 찾아 알파벳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운동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엊그제 골프장에서 만난 선배가 하루에 90개씩 팔굽혀펴기를 한다는 말에 놀라, 50개씩 하던 것을 60개로 늘리기로 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다. 비록 올해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고, 다시 시작한 것을 연내(年內)에 끝내지 못해도 괜찮다. 지나온 열 달의 시간을 되짚어, 연초에 마음먹었던 것 중 못했던 것과 부족한 것들을 확인한다. 다시 시작하고 보완한다.

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 소식 전하지 못한 이들 목록을 만든다. 그리고 하루에 세 명 이상씩 전화하기로 한다. 그냥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느냐고,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다고. 시간이 허락하면 식사 약속을 해서 오랫동안 묵혔던 사연들을 나누기도 한다. 그중에는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은사도, 친척도, 의뢰인도, 우연히 어떤 모임에서 만났던 이도 있다. 정답다. 고맙다. 그런 이들과 안부를 나누고, 길지 않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내게 전화해서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업무이건 아니건 더욱 반갑다. 나를 기억해 준 그 자체만으로도 고맙다. 대화와 만남을 통해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느끼고,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감사한다. 오늘 이렇게 건재하고 있음이 모두 그이들의 응원과 협력과 도움에 힘입은 것이고, 그들을 움직이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교회에서는 11월을 '감사의 달'로 정하고 추수감사주일을 정해 특별헌금도 하도록 권장한다. 미국 캐나다 사람들의 전통인 추수감사절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성경 출애굽기 23장에 근거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1789년 초대 조지워싱턴 대통령 때부터 11월 넷째 목요일을 국경일로 정해 지키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추석과 같다. 온 가족이 모여 조상을 추모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가을걷이를 다 끝내놓고 만추에 드리는 감사절은, 막 가을걷이를 시작하거나 한창 때 드리는 우리네 추석과는 달리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 10월에 대부분 열매를 맺고 수확하지만, 모두 끝나지 않는 것처럼, 아름다운 단풍도 10월에 끝나지 않는다. 오늘처럼 여전히 만추의 단풍이 즐겁게 해준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지나온 열 달을 되짚어 감사하고, 따뜻함으로 겨울을 준비할 수 있어서 고마운 11월.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중요한 달이다. 풍요로움에 취해 산과, 들과 바다로 들떠 돌아다니느라 바빴던 10월, 마지막 달이라는 것 때문에 쓸쓸해지고 각종 송년모임으로 정신없을 12월에 비해, 11월이야말로 차분히 자신과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때다. 겨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겨울과 연말을 준비하자. 밀쳐놓았던 것, 못했던 것 찾아 다시 시작해보자. 오랫동안 못 만난 이들에게 안부와 감사 전화를 해보자. 넉넉하고 따뜻한 11월이 될 것이다. 다시 창밖을 보니 역시 아름다운 11월의 단풍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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