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주시 성안길의 한 의류매장이 폐업정리를 위해 재고상품을 입구에 진열해 판매하고 있다. / 안성수
청주시 성안길의 한 의류매장이 폐업정리를 위해 재고상품을 입구에 진열해 판매하고 있다. / 안성수

문재인 정부 들어 자영업자들이 악순환을 겪고 있다.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문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신규 자영업자의 절반이상은 직전까지 월급을 받고 회사에 다니던 임금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불안과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가계를 꾸려나가야 할 가장들이 자영업 전망이 어두운 것을 알면서도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비임금근로 부가조사 결과는 암울한 자영업계 현실과 직장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사회진출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청년층의 좌절이 디테일하게 담겨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한 채 고집스레 경제정책에 대해 자화자찬만 남발하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어제 국회에서 "(촛불민심을 위해 가장 잘한 일은)저소득층, 중산층을 위한 소득주도선장 정책을 시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식적인 통계가 알려주는 서민들의 고통엔 전혀 안중에 없는 발언이다. 이러니 경기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통계청 조사결과는 침체된 경제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도소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는 2013년 같은 기준으로 통계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통계청은 "전체 자영업자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돼 도소매업이나 제조업 위주로 한계에 있는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늘어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주시와 세종시 등 유동인구가 많아 상권이 활성화 된 곳도 거리를 걷다보면 영업부진에 시달리다가 '점포임대'라고 써 붙인 곳이 흔하다. 상당수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문 닫은 점포를 인수해 자영업자로 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년 이내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 중 56.9%가 임금 근로자였다. 이는 조선업·자동차 등 산업 구조조정 여파로 고용이 불안해진 노동자들이 일부 자영업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명예퇴직금을 밑천으로 경쟁이 치열한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1∼3개월 미만의 초단기 창업이 49.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 준비·경험부족으로 자칫하면 창업자금만 날린 채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구직활동을 포함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은 대학 졸업자인 것으로 나타난 것도 걱정스런 대목이다. 취업준비기간이 길은 점도 있지만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힘들 자 아예 '백수'를 선택한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려면 정부의 정책적인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정책 기조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난국의 해법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고 장 실장은 "내년엔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물론 국책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도 우리경제가 정점을 지나 하강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전혀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으니 자영업자와 근로자들은 생계불안에 시달리고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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