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권섭 제37보병사단 공보담당관

비포장도로. / 클립아트코리아
비포장도로. / 클립아트코리아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도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되어있지만, 내 어릴적 기억속의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도로여서 흙먼지가 날리고 자동차가 덜컹거리는 것은 물론 비가오면 길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년시절에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포천 일동면 인근의 외가에 갈 때 면 언제나처럼 밤 새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킬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포천시내를 벗어나 일동면 인근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버스는 덜컹거리기 일쑤였고 맑은 날이면 달리는 버스 뒤로 마치 봄날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고 비오는 날 움푹움푹 패인 물웅덩이를 지날 때 면 흙탕물이 독립을 맞은 듯 만세를 부르며 튀어 올랐다. 겨울이면 얼어붙은 도로 위를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는 버스 창을 열고 담배를 피우시던 운전기사 아저씨가 내뿜는 하얀 담배 연기, 정거장도 없이 지나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 정차해 아름아름 들고 있던 보따리를 들고 차안에 오르던 풍경이 떠오른다.

불과 수십여년전 이지만 비포장 도로위를 달리는 버스 안은 나만의 놀이공원 이었으며 작은 사회였다. 어느덧 성인이 되고 무언가에 달아나듯 살아가다 보니 이제야 어릴적 비포장 도로위를 덜커덩 거리고 흙먼지를 날리던 시골버스가 나에게 주었던 것은 단지 놀이만은 아니었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포장도로에는 정리되지 않은 다양한 것들로 가득하다. 자갈, 모래, 웅덩이 등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요소들이 목적지를 향하는 버스를 가로막는다. 그러다보니 덜컹거리기도 하고 흙먼지도 날리고, 때로는 물이 고여있는 진흙탕길도 지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버스 안 승객들의 사연을 싣고, 소중한 약속과 소망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 흙먼지가 날리고 덜컹거려서 물웅덩이가 있어서 버스가 운행을 안 한다면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리던 승객들의 소중한 사연도 없을 것이고 추억과 기억도 없을 것이다.

요즘 우스개 소리로 가만히 있는 게 나서는 것 보다 백번 낫다는 소리들을 간혹 듣곤 한다. 애써서 나서서 욕먹느니 내일 아니면 모른척하고 눈감고 살라는 충고 아닌 충고요 배려아닌 배려일 것이다. 그러나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리던 그 낡은 시골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고 차고에 가만히 있다면 버스야 편하고 괜한 욕도 먹지 않으니 좋겠지만 내 소중한 유년시절의 추억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약속과 믿음을 지켜 낼 수 있었겠는가 반문하고 싶다.

신권섭 제37보병사단 공보담당관.

물이 끊으면 김이 오르듯 비포장 도로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흙먼지가 나고 덜컹거리는 것이다.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간혹 오해 아닌 오해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고 해서 실수 아닌 실수를 했다고 해서 질책하고 비난하기보다는 격려하고 이해하며 용기를 붇 돋아주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게 소망이자 바램이다. 미국 대학농구의 전설이자 현대농구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존 우든 (John Wooden) UCLA농구팀 감독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무엇인가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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