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문방사우 / 클립아트코리아
문방사우 / 클립아트코리아

얼마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그후 길가의 가로수 잎은 낙엽되어 스잔한 바람이 불면 흩날린다.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 마음이 자리잡는다. 이 가을도 서서히 우리곁을 떠나는가 보다. 가는 늦가을을 아쉬워하며 이제라도 만추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어 며칠전 안식구와 지인 몇분과 함께 우리고장의 문화재가 숨 쉬고 있는 청풍을 찾았다.

우리는 문화제단지에서 고가(古家)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를 보면서 새삼 선현들의 지혜와 역사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또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을 만났다. 제천 고려 청풍한지(韓紙)체험관이다. 불현듯 초·중학교를 다니던 60년대 중반이후의 추억이 뇌리를 스쳐갔다. 제천의 넋고개 아래 닥나무로 만든 한지 (韓紙)공장이 있었다. 그래서 집으로 갈 때 올때면 하천가에 많은 닥나무껍질들이 널려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지체험관의 문을 두드렸다. 마침 한지체험관 채병관관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어릴때 문종이에 얽힌 몇가지 추억담을 말씀 드렸더니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시며 제천 고려 청풍한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청풍강 인근은 우리나라 최대 닥나무 자생지였다고 한다. 그 양과 품질도 으뜸이어서 단연 한지생산의 중심지였으며 중국에서는 청풍닥나무로 만든 고려지를 최고의 외교예물로 반겼다고 한다. 특히 송나라 조희곡의 '동천청록'에서는 '고려지는 마치 누에고치로 만든 비단같아 글씨를 쓰면 먹빛이 아름답다'고 극찬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천년의 역사를 이어오던 청풍지는 닥나무 자생지가 수몰되면서 안타깝게도 명맥을 다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곳 한지 체험과 전시관이 건립되면서 청풍지의 명맥을 다시 이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채 관장은 "청풍에서 생산된 청풍지의 우수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그동안 잊혀진 명성을 되살려 제천을 명실공히 전통한지의 중심으로 다시 세워 나가고 싶다"말했다. 이를 위해 한지뜨기 체험과 공예제작체험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지공예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색지공예, 지장공예, 지호공예, 지승공예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는 소박하면서도 실용의 미와 자연의 미가 잘 어우려지는 훌륭한 공예품이다. 이곳에서 한지등 만들기, 과반만들기, 꽃신만들기, 꽃부채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니 제천 고려 청풍한지 체험관은 우리지역의 보고(寶庫)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무릇 한지는 '문방사우(文房四友)'라 불리울 만큼 우리 민족과 가장 가깝게 지내온 귀한 존재로서, 우리민족 생활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며 세계속에 한지의 우수성을 펼치고 있다. 어쩌면 인류사회에 있어서 문화의 발달은 종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전승하고 보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학습하는 다양한 문화유산교육이 지속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문화유산을 체험함으로써 우리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극대화함은 물론 새로운 문화창조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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