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14일 오후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한운사기념관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개관식에서 참석자들이 제막식을 하고 있다. 2013.06.14.  / 뉴시스
14일 오후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한운사기념관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개관식에서 참석자들이 제막식을 하고 있다. 2013.06.14. / 뉴시스

"우리가 학도병으로 나가면 2천5백만 조선 동포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 청년 한운사는 1943년 12월, 일본 유학시절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 일본인들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진다. 이 말 한 마디로 그는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산골에서 태어난 한운사는 세상을 제대로 알고 지식을 배양해야만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배를 타고 현해탄으로 건너갔다.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학도병으로 징집돼 해방될 때까지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 불문과에 재학 중 KBS 라디오 드라마 <어찌하리까>로 방송계에 데뷔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은 우리나라의 두 번째 TV 일일 연속극이었다. 뒷날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때 쓴 글이 문제가 되어 옥고를 치렀다. 6.25 때 위정자가 국민들을 속이면서 서울을 버리고 남쪽으로 도망친 사실을 폭로했다고 해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된 것이다.

그의 자전적 소설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식민지 백성의 고통과 일본군국주의의 잔혹성에도 굴하지 않는 휴머니즘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와 TV 드라마로 소개되면서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다.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빨간 마후라>, <남과 북>은 불후의 명작으로 오랜 기간 우리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다. 냉전시대에 겪어야 했던 아픔을 그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렸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1980년대 역사적인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날이면 날마다 라디오와 TV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다. 이 노래는 1964년 KBS에서 방송된 일일연속극 <남과 북>의 주제곡이었다. 드라마와 주제곡 모두 한운사의 작품이다.

이처럼 한운사의 삶과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격동의 시대를 웅변하다. 그의 글은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아픔을 담았으며 새로운 희망의 나래를 펴기 위해 가슴을 보듬는다. 그의 글은 쉽고 명쾌하고 거침없으며 오묘했다. 그의 드라마와 언어는 마법처럼 사람들을 홀렸다. 사회와 역사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우리의 아픈 일상을 서사구조로 풀었다. 국가와 민족, 가정과 이웃, 사회와 모럴, 애정과 풍속까지 한운사의 드라마는 모두가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그 이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얼굴 잊은 것은 아니지만, 흘러간 세월속에 묻어둔 사랑, 레만의 호수에서 만날 때, 나는 울었네. 갈라진 나라를, 말 못할 사연을 나는 울었네." <레만호에 지다>는 남한 외교관(이영하)이 스위스의 이국땅에서 북한의 옛 애인(정애리)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드라마였다.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에세이스트

새마을 운동 주제가로 알려진 '잘 살아보세'를 비롯해 '서울이여 안녕', '눈이 내리는데' 등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작사했다. 시인, 소설가, 서예가, 극작가, 영화시나리오 각본 작가, 영화배우, 교사, 교수, 언론인….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가 남긴 영화와 드라마는 100여 편이나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국영화의 풍운아 영화감독 신상옥>에서는 직접 배우로 활약했다. 그는 한국작가협회 이사장을 8회나 역임했고 대종상, 청룡상, 방송대상, 백상예술대상 등 수많은 수상 기록을 남겼다. 불꽃같이 살다간 그의 업적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헌정됐다. 드라마, 영화, 문학 등 장르를 넘나들며 질곡의 시대상의 담았다. 시대의 지성과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꿈꾸며 일구었다. "한 가닥 구름 이는 것이 태어남이요, 한 가닥 구름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 "나를 위해 한 평의 땅이라도 헛되이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2009년 8월 11일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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