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이야기] 김창식 충북과학고등학교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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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 싶은 것이 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한 것이 있다. 사춘기의 어른에 대한 호기심이다. 비밀스런 호기심은 꿀단지처럼 단내를 풍긴다. 훔쳐서라도 보고 싶은 충동을 일깨운다. 충동의 유혹이 일궈내는 부끄러움은 감미롭다.

고개를 세 개나 넘어서 읍내 중학교에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 맞닥뜨리는 환경은 경이로웠다. 자장면을 파는 중국식당을 눈으로 볼 수 있었거니와 골목골목에서 풍기는 붕어빵 굽는 냄새와 책이 빼곡하게 꽂힌 서점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내게는 처음이지만 읍내에서 이미 호사를 누린 친구와 허름한 만화책 가게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붕어빵을 굽고 있었으며 만화책이 빼곡한 책장이 있었는데 표지가 불긋불긋한 어른용 잡지도 꽂혀 있었다. 고픈 뱃속을 자극하는 붕어빵과 배달된 자장면도 먹을 수 있었다. 간장같이 시커먼 물을 따라주기에 한 모금 마셨다가 목구멍을 깎아내는 느낌을 처음 느꼈는데 콜라였다. 붕어빵과 콜라에 매료되었던 관심이 책장에 촘촘한 책으로 옮겨갔다. 만화를 먼저 손에 잡았고 만화에 싫증이 났을 때 손에 잡힌 것은 여자 사진이 표지에 크게 실린 주간지였다.

누구에게 들킬까 주변을 돌아보았고, 목차를 읽었을 때 얼굴이 화끈 붉어졌다. 그날은 더 이상 읽지 못했다. 책꽂이에 놓고 돌아설 때의 아쉬움과 그날 밤 눈에 선하게 떠올라 뒤척이던 기억이 아직도 아슴아슴 살아 있다. 비록 표지와 목차만 보았지만 잠깐 동안 손아귀에 잡혔던 주간지는 내게 첫 잡지였다. 내 삶의 나이테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라면서 많은 사건이 있었다. 물가에 살았던 터라 폭우로 강물이 안방까지 차오를 때의 공포. 겨울 초저녁에 초가집이 불길에 휩싸여 고스란히 재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소년의 무기력과 황당함. 영부인의 저격에 몸을 떨던 분노. 대통령의 저격과 계엄령. 캠퍼스에 군대가 주둔하면서 휴교령이 내려졌던 대학시절. 돌이켜 보면 이러한 사건들이 내게 갈피갈피 기록되어 지금의 성인이 되었다.

청년기에 그 시절 주간지를 몰래 사서 읽는 대담성이 생겼다.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 꾸며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황당하면서도 자극적인 사건들을 탐독했다. 사건사고로 위장한 시시콜콜하고 낯 뜨거운 이야기들이 가명으로 포장되어 호기심을 지극했다. 눈을 검은색 띠로 가린 여자의 사진과 스캔들의 선정적인 내용을 읽었다.

요즘은 그 시절의 주간지를 볼 수 없다. 스마트폰 버튼을 두드리면 언제 어디서나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중학교 교사가 된 내게 맞선을 보았던 여자가 찾아왔을 때 그녀의 손에 들린 주간지를 보고 나는 속으로 그녀를 하찮게 평가하는 무례를 범하였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당당하게 들고 다니며 공개된 장소에서 읽는 용기가 있었다. 나는 그녀 못지않게 그 잡지를 탐독하였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려는 비굴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김창식 충북과학고등학교

그 시절의 주간지는 칠십 년대 억압과 빈곤의 청소년기를 보낸 내게 유혹과 충동을 일깨웠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그때의 충동이 내게 잠재된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십여 년 동안 발표한 열 두 권의 소설책을 다시 읽어보면 그때의 유혹과 매료와 충동이 언뜻언뜻 비친다. 내 삶의 나이테로 확연히 각인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를 바꾸어 가는 시간의 알약이 개발되어 매일 꼬박꼬박 복용한다 해도 그 시절에 내게 각인된 나이테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성장기 학생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담 넘어 불구경으로 간과해서는 안 됨을 요즘 깨닫는다. 우리들의 주변이 성장하는 청소년의 평생 나이테로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음을 어른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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