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까지 백제유물전시관 전시실서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땅에 묻은 고려의 보물 남석교가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 다시 태어났다.

남석교는 고려 말쯤 만든 청주읍성 남문을 나와 무심천을 건너던 돌다리로 길이가 80.85m다.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 따르면 옛 기록에 청주의 큰 다리(大橋)는 달리 남석교라 하는데 옛 정진원(情盡院) 앞 다리라 했다. 물길 이름조차 대교천(大橋川)이라 했으니 이 다리 이름에서 비롯했다. 대교천은 18세기 후반 이후 무심천(無心川)이라 부르기 시작해 따로 쓰다가 남석교가 묻힌 이후 무심천 하나로 불렀다. 고려 건국 1100년. 청주를 대표하던 고려의 보물, 남석교는 1936년 육거리시장 바닥에 묻혔다

조선 말기부터 남석교는 신라 개국 연대인 BCE 57년, 한(漢) 오봉원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것은 을묘년(1795년, 정조19) 청주목사 안정탁(安廷鐸)이 남석교와 제방을 고쳐쌓고 세운 '남석교수성수축사적비南石橋水城修築事蹟碑'에서 비롯했다. 옛 중영 앞에 세웠다는 이 비는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남석교는 널다(板橋) 모양으로 고려 이후 만들었다. 같은 모양의 서울 살곶이다리(箭串橋)는 보물 제1738호로 1420년 세종 2년에 처음 만들기 시작해 1483년 성종 14년에 완성했다.

남석교는 땅에 묻혔지만 다리 안팎을 지키던 '고려견'은 지금도 남아있다. 청주대학교 박물관 앞에 한 쌍, 충북대학교 박물관 앞에는 위가 깨진 1기가 있다.

돌 기둥 위에 개 형상을 올려 놓은 석주는 남석교의 양 끝에 한 쌍씩 있었다고 한다. 개는 읍성을 지키는 파수였다. 밤새 도둑을 막아주던 개처럼 청주의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석상을 고려견이라 한다.

백제유물전시관 관계자는 "아마도 남석교가 고려 때 만든 것이다보니 그리 이름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다른 예에 비추어 조선 후기에 만들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며 "돌 기둥의 모습은 정조 때 쌓은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 앞 해태상의 기둥과 닮았고 견상은 경상좌수영성 남문것과 똑같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12월 16일까지 관람 가능하며 이번 전시와 함께 남석교를 3D 디지털로 복원하는 영상도 제작해 남석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