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정연정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문화·관광)

엊그제 우암산 서쪽 자락 수암골에 가서 보니 가을은 깊게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수암골의 분위기는 왠지 2-3년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좁은 틈새로 점차 건물이 다닥다닥 빼곡하게 들어서더니만 지금은 예전에 즐겨 찾던 수암골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다. 늦가을의 쓸쓸함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삭막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본래 수암골은 광복 후 만주, 일본 등지에서의 귀향민이 우암산 서쪽 자락에 터를 잡게 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즉 한국전쟁 1·4후퇴 때 연합군을 따라 남하한 피난민들을 현재 보건소, 3·1공원 일대에 위치해 있던 23육군병원에 수용하게 되었는데, 피난민수의 급증에 따라 현재의 수암골에 새롭게 피난민 이주단지를 조성, 귀향민과 합류하게 되면서 형성된 청주의 대표적인 달동네라 할 수 있다. 당시 청주시로부터 가구당 20평을 기준으로 주거공간 마련에 필요한 목재, 서까래, 흙벽돌 등 기초적인 물자를 지원받아 우암산 자락 보리밭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60-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청주시의 대표적인 낙후지역 중 한 곳이었으나, 2005년부터 추진된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수암골은 급격하게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청주시 수동 13통에서 28통을 거쳐 현재의 중앙동 15통 일대를 말하는데, 주소가 도로명으로 바뀌면서 수동의 '수'자와 우암산의 '암'자를 따서 '수암골'로 골목 이름을 지으면서 수암골로 불리게 되었다.

수암골이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부터 시작한 공공미술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마을에 벽화를 그리게 되면서부터이다.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마을 담벽에 벽화 그리기, 호주 문패달기, 주민 중심의 마을공동체축제 활성화, 공방 및 풍물패 운영 등 지역주민을 연계로 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추진되고 드라마 촬영지 선정 등이 이어지면서 점차 수암골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각광을 받게 되었는 바, 2009년 '카인과 아벨', 2010년 '제빵왕 김탁구' 그리고 2011년에 '영광의 재인'을 찍으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부각되었다.

중요한 청주시 관광지중의 하나라는 성격 변모와 함께 늘어나는 방문객들을 상대로 한 주변 상가 입주 등으로 인해 수암골 공동체 주민들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최근 들어 외지관광객은 물론 청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관광지로서의 성격을 띠기 시작하였지만, 최근 상가 위주의 난개발로 인해 수암골 고유의 이미지가 점차 사라지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1990년대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도시관광에 대한 관심 증대는 크게 도시정책적 측면과 관광적 측면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우선 도시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역사, 문화적인 도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내방 관광객의 급증으로 인해 발생한 제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중요한 목적이 된다. 한편 관광의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들어 도시 갱신을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서의 관광의 역할과 함께 도시 자체가 주요한 관광목적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관심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한때 주말 관광객의 급증으로 몸살을 앓던 수암골은 최근 들어 우후죽순격으로 난립하는 상가건물, 관광객의 급감, 수암골 고유의 이미지 퇴색 등 많은 악재가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도시갱신을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시작된 수암골 관광이 이제는 각종 혼잡비용이 발생하며 나타나는 여러 문제해결을 위해 도시정책적 접근 방식이 필요로 할 때가 되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연정 충북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정연정 충북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이를 위해서는 우선 수암골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구성주체들, 즉 수암골 원주민, 상가연합회, 입주작가들 그리고 수암골을 찾는 관광객 및 시민들이 수암골이 갖고 있는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를 사이에 두고 어떠한 형식으로 함께 공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효율적인 전략 수립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즉 수암골의 범위를 상가구역, 자동차 및 도보 진입 경로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재정립하여, 수암골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개발방향을 정립함으로써 관광자원으로서의 수암골의 이미지 강화 및 인지도 제고하기 위한 기본방향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것도 그나마 흔적으로나마 조금 남아 있는 수암골의 긍정적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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