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교도소. / 클립아트코리아
교도소. / 클립아트코리아

[중부매일 메아리 박상준] 마흔 남짓한 남자가 있다. 성인이 되고 가장 오랫동안 지낸곳은 집이 아니라 교도소 창살안이었다. 고아였던 그는 18세때 빈집에 들어가 2만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훔쳤다가 구속됐다. 청소년인데다 초범이지만 '도주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상이 참작되지 않았다. 출소한 이후 먹기살기 힘들때마다 빈집털이를 하면서 전과 7범이 됐다. 교도소를 내집처럼 드나들면서 15년간 사회와 격리됐다. 몇달전 언론에 보도된 불행한 전과자의 삶은 읽는이의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소설 속 주인공이 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빅토로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다.

'개털과 범털'. 죄수들의 은어다. 개털이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일반 재소자라면 범털은 돈은 물론 권력도 있는 거물급 재소자다. 한국판 장발장인 40대 남자가 개털이라면 범털은 최근 '황제보석'으로 주목을 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400억 원대 배임·횡령·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지만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을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됐고, 간 절제 수술 후 병보석까지 허가받아 7년 8개월째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그는 딱 63일 수감생활을 하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후 보석 장소인 집과 병원을 벗어나 서울 강남과 이태원 등에서 쇼핑에다 음주와 흡연까지 하는 모습이 노출됐다. 간암에 걸렸다는 사람이 술집에 들어가면 새벽까지 술을 퍼마셨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이 전 회장이 재벌총수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특혜다.

경우는 다르지만 지난 2012년 1월21일 횡령 및 탈세 혐의로 기소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4년 전 일당 5억 원짜리 노역 판결을 받았다가 화제를 뿌렸다. 허 전 회장은 49일간 하루 노역으로 일당 5억 원씩 차감 받으며 쇼핑백 만들기, 두부 만들기 등의 단순작업을 배정받아 '황제노역'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거액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배째라'며 버텨 245억 원을 탕감 받았다. 반면 서민들은 파산하면 철저히 빼앗긴다. 서울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의 주인공들은 가장이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오른 뒤 사망하면서 중산층에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반지하 셋방에서 자살직전까지도 집주인에게 공과금 60만원과 편지를 써놓고 미안함과 괴로움을 드러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3년전 모 시사프로그램에선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담장 위를 걷는 특권'이 방영됐다. 제작진은 비슷한 형을 선고받은 개털과 범털을 추적했다. 한 사람은 빈 식당에 몰래 들어가 라면 2개를 끓여먹고 라면 10봉지를 훔쳤다가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또 한사람은 재벌 오너로 회사공금 497억 원을 횡령한뒤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재벌회장은 수감생활 중 특별대우는 물론 2년7개월 만에 특별사면 됐지만 개털은 교도소안 TV에서 범털의 사면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영화에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형사와 검사가 못된 재벌이나 정치인을 잡아넣는 마지막 장면에 꼭 나오는 범털의 시니컬한 대사가 있다. "내가 (교도소에서)얼마나 살 것 같아.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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