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짝꿍. / 클립아트코리아
짝꿍. / 클립아트코리아

나에게 늘 함께 하는 예쁜 짝꿍이 있다. 예전 짝꿍을 잘 못 만나면 학교 가는 게 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짝꿍을 잘 만나면 등굣길이 신이 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외딴 산마을에 사는 소녀와 짝꿍이 되었다. 짝꿍은 큰 눈에 말수가 적었다. 어떤 친구들은 책상에 반으로 금을 그어 놓고 자기 쪽으로 못 넘어오게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히 싸운 적이 없었다. 진달래가 피는 봄 짝꿍의 집으로 놀러갔다. 아마도 난 진달래가 엄청 많다는 짝꿍의 말에 따라 나선 것 같다. 한참을 가고 또 가서 산 중턱에 갔을 때 친구네 집이 덩그러니 한 채 있었다. 갑자기 문둥이가 간을 빼 먹었다는 옛날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님 친구가 텔레비전 '전설의 고향'에서 본 여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래서 짝꿍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혹시 꼬리가 있나 자꾸 눈이 갔다.

친구와 함께 진달래를 꺾었다. 막 봄이 오는 산에 분홍빛으로 모여 핀 진달래꽃이 참 예뻤다. 아껴 쓰던 왕자파스 분홍색보다 더 예뻤다. 집으로 가는 길 친구는 자기가 꺾은 진달래까지 나에게 건네주었다. 난 진달래꽃을 가득 안고 집으로 향했다. 진달래꽃을 안고 좋아라 하던 내 모습에 소리 없이 웃던 짝꿍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짝꿍은 어떻게 살까? 가끔 생각 날 때가 있다. 그 이후 '짝꿍'이란 말이 흐려질 무렵 예쁜 짝꿍을 만났다. 바로 나의 단짝인 아내다. 책상에 반으로 금 긋기 싸움도 없어 좋고, 가끔 말썽을 피워 짝꿍이 선생님한테 이르는 일도 없으니 최고의 짝꿍이다.이런 짝꿍을 난 '박자기'라고 부른다. 아내 성이 박 씨이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 처음에 작은 아이가 어릴 적에 정말 엄마 이름이 '박자기' 이냐고 묻기도 했다. 요즘 내 짝꿍 박자기는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바로 짝꿍인 나를 잘 못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자다가 일어나 심심하면 아내인 짝꿍을 깨우기 일쑤다.

"박자기, 박자기... 갑자기 나 배고픈데...." "박자기, 박자기... 이 책 읽었는데 너무 슬퍼. 읽어 줄 테니 한번 들어볼래." 요즘 들어는 이 나의 증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박자기, 박자기... 밖에 비와. 비 내리는 소리 진짜 좋다. 같이 들으면 안 될까? 아, 커피 한 잔이랑 함께 한다면 더 좋을 거 같은데...."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내 착한 짝꿍 '박자기'는 한 번도 "싫어"라고 말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난 들어 줄 때까지 계속 조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말 아내는 '짝꿍'을 잘 못 만난 것 같다. 나 같으면 왕창 잔소리 소나기를 퍼 부었을 텐데. 어쩌면 아내도 나 모르게 장모님께 내 괴롭힘을 몽땅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장모님은 나를 보면 언제나 안아주며 사랑을 듬뿍 주시기 때문이다. 가끔 친절한 짝꿍 아내를 보면 혹시 꼬리 달린 여우가 아닌가? 또 예전 짝꿍처럼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화를 안 내는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내 곁을 떠나갈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님 더 나이 들면 반대로 내가 했던 것처럼 아내가 친절하게 "김자기, 김자기... 나 심심한데 노래 좀 불러줄래요, 책 읽어 줄래요."라고 할 것도 같다. 가끔 아내에게 "박자기, 이다음에 자기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가 오면 내가 다 갚을게." 라고 말한다. 그럼 내 예쁜 짝꿍은 웃는다. 현재 몸 상태로 보면 내가 먼저 갈 거 같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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