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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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사설] 현직 판사시절인 5년 전 자신이 재직 중이던 청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을 만나 636만원어치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변호사에게 최근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1, 2심에서 "향응은 부적절하지만 뇌물로 볼 수는 없다"고 무죄로 판결한 것을 원심 그대로 인정했다. 법원은 알선 뇌물수수는 다른 공무원이 맡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청탁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피고인은 전직 판사에게 사건의 세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으며 구속에 임박해서도 전화나 문자 등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죄판단의 근거가 됐다고 한다. 반면 피고인은 전직 판사에게 접대비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를 고소한바 있다. 피고인은 '뇌물'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판결이 공직윤리에 대한 국민상식에 맞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법조계조차 전직 판사에 대한 '관대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김영란법(청탁방지법) 시행되고 있지만 이 같은 판결로 공직부패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이다.

김영란법이 제정된 배경은 후진국형 공직비리가 도를 넘을 만큼 부패가 우리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자랐기 때문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처럼 금품을 받아왔다. 권부(權府)의 핵심인 청와대 고위공직자와 여야정치인은 물론 사정의 중추기관인 검찰도 예외가 없었다. 특히 김영란법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벤츠 여검사 사건'은 사랑의 증표가 5591만 원 상당의 벤처 등 금품으로 둔갑해 세간을 놀라게 했던 사건이다. 현직여검사가 변호사로 부터 사건청탁을 대가로 명품브랜드의 대명사인 벤츠와 명품백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시작됐다. 이 때문에 특임검사팀까지 꾸려질 만큼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2012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법령을 제안한 것이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다.

이후 김영란법은 우리사회의 부패사슬과 청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5만원'은 대다수 공무원들과 서민들의 뇌리에 박혔다. 공무원들 중에는 마음에서 우러난 민원인의 따뜻한 커피한잔을 마다하거나 지인이 밥 한번 먹자고 해도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또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손주 담임교사에게 건네준 박카스 한 병조차 거절당하는 것이 요즘의 교실풍경이다. 물론 전직판사가 향응을 제공받은 시기는 김영란법 시행 전이다. 하지만 법관이 다른 재판부 피고인으로부터 4개월간 아홉차례에 걸쳐 향응을 접대 받은 것을 죄가 없다고 한다면 납득하지 못할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부패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었던 대한민국이 깨끗하고 투명해지려면 사법정의를 실현해야할 법조인과 사회지도층부터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김영란법 제정취지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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