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대법원이 오승헌씨에게 '종교적·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판결을 내린 1일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11.1 / 연합뉴스
대법원이 오승헌씨에게 '종교적·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판결을 내린 1일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11.1 / 연합뉴스

최근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청년이 대법원까지 이르는 재판을 통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간 대법원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 포함)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 양심적 사유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한 하급심 법원의 판단을 지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피고인이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입영하지 않고 병역을 거부한 사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그 불이행에 대하여 형사처벌 등 제재를 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되므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무죄로 판단함으로써 앞으로는 진실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실형선고는 사라질 전망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판단은 몇달전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통해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병역법에 규정되어 있는 병역들은 모두 군사훈련을 받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그러한 병역을 부과할 경우 그들의 양심과 충돌을 일으키는데, 국가가 관리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전심사절차와 엄격한 사후관리절차를 갖추고,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사이에 복무의 난이도나 기간과 관련하여 형평성을 확보해 현역복무를 회피할 요인을 제거한다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서도 병역의무의 형평을 유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함에도 국가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만을 규정하는 것은 위헌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드물다. 특히 강한 징병관리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군사강국 러시아조차 19세기 말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고, 레닌의 공산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시절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를 인정해 오고 있다. 최근까지 G20 국가 중에서 대체복무를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형사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런 까닭에 UN인권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세계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중인 사람은 전세계에서 723명이고 그 중 669명이 한국인이다. 이는 전체의 93%에 달하는 수치이다.

통상 양심적 병역거부는 군복무자와의 형평의 문제로 대개 대체복무와 함께 논의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 여러 구체적인 대체복무 형태와 기간이 논의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제도의 핵심적 세 가지 기준으로 ①비전투적이거나 시민적 특성을 띄어야 하며, ②공익에 부합해야 하고, ③징벌적 성격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위 조건 중 징벌적 성격은 대체복무기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유럽평의회에서는 대체복무기간이 군복무기간에 두 배에 달하면 징벌적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대체복무로 현역 육군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동안 지뢰제거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대체복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일부는 대체복무제의 도입으로 병력자원이 크게 감소하여 남북간 군사적 균형이 깨어질 것을 우려한다. 기계문명이 고도화되고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스마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걱정이다. 오히려 필요최소한의 우수 인력만 병력으로 선발하여 첨단장비로 무장시키고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선발되지 못한 다수는 각종 사고나, 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도록 하는 대체복무에 투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정책이라 생각한다. 그런 세상이 오면 어쩌면 군대에 가는 것이 양심에 합당하다며 양심적 병역요구를 하는 자원자가 빗발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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