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고양이. / 클립아트코리아
고양이. / 클립아트코리아

뺀질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집을 나가기에는 아직 어린 수컷이기에 사료 먹을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여간 궁금하고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유난히 먹을 것에 집착하는 녀석이었기에 한 번도 식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삼색이가 낳은 다섯 마리의 새끼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이었다. 눈에서는 꾀가 흐르고 손에 든 먹이를 가로챌 정도로 당찼으며 당돌하기까지 하였다.

이름을 지어주고 나서 흠뻑 정이 들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고양이들이 서운하여 다시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런데도 며칠 전 뺀질이에게 또다시 이름을 지어준 것이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넉살 좋게 다가오는 길고양이가 있었다. 사람의 몸에 스윽 자신의 냄새를 묻혀가며 부비적 대며 도망도 가지 않았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녀석의 행동을 거부하였지만 녀석은 매일매일 드나들며 나를 세뇌시켰다. 그러고서는 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세끼 세 마리를 물고 들어왔다. 마치 길고양이에게 집사로서의 자격을 시험당한 기분이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이제 겨우 눈을 뜬 털이 복슬복슬한 고양이 세 마리는 두렵고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빤히 쳐다보며 뒤란에 둔 박스 안에서 자랐다. 신기하고 귀여운 마음에 녀석들이 커가는 예쁜 모습을 관심 갖고 살펴보게 되었다. 수컷 두 마리에 암컷 한 마리였다. 커가면서 곁을 주지 않는 수컷들과는 달리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암컷에게 부르기 쉬운 '야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수컷 두 마리에게는 그보다 훨씬 늦게 신뢰와 교감이 이루어진 다음 '료운이'와 '안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길고양이라고도 집고양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 안으로 들어온 고양이들. 이름을 지어주고 나니 그 녀석들에게는 더 각별해진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반려 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것이라 그냥 가끔 먹이를 챙겨주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태생이 길고양이인 녀석들은 마음 아픈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혹은 누군가에게 붙잡혀서 수염이 잘린 모습으로 나타날 때면 안쓰럽기 이를 데 없었다.

'야옹이'가 첫 새끼를 낳던 날은 몹시 당황하였지만 산실을 만들어 주고 고양이 사료도 사다 먹이면서 산간을 하였다. 생명을 가진 것이기에 외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잘 보살펴 주었는데도 며칠 지나지 않아 새끼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때는 고양이의 습성이라지만 서운하기도 하였다. 영역 싸움에서 밀린 수컷들은 자리를 떠나고 야옹이 새끼들이 자라서 새끼를 낳고 또 떠나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많을 때는 고양이의 수가 열다섯 마리까지도 왔다 갔다 했다. 마루, 예삐, 똘똘이, 냥이, 검둥 이등 이름을 붙여준 길고양이들이 열 손가락을 넘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마치 제 집인양 집고양이처럼 지내던 똘똘이는 개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골골 송을 부르며 애교가 많았다. 평화롭게만 보였던 시골 길고양이들에게도 나름 치열한 영역싸움이 있었는지 밤새 시끄럽던 밤을 마지막으로 똘똘이를 볼 수 없었다.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길고양이들에게는 힘든 나날이 될 것이다. 아직 어린 뺀질이가 어디에서 또 어떤 이름으로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게 잘 살아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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