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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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Pandora). 판도라 하면 '상자'가 먼저 떠오른다. 고통과 불행이 모두 빠져나가고 희망만 남은 상자다. 어떻게 해서 희망만 남게 되었는가? 정말 희망이 들어있을까?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主神)은 대지의 신, 가이아의 손자 제우스다. 신들을 다스리는 절대 권력을 지녔다. 감히 어느 신도 제우스를 거역할 수 없다. 이런 제우스를 분노하게 한 사건이 터졌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일이 발생했다. 범인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먼저 생각하는 자)였다. 그는 신의 종족인 티탄(Titan:거신)족으로 제우스의 삼촌인 이아페토스(Iapetos) 아들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는 사촌이다.

인간은 불의 사용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생활이 편리해졌다. 신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생각에 신을 믿지 않는 일까지 벌어졌다. 인간의 삶은 갈수록 행복했다. 반면 프로메테우스는 엄청난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코카서스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쇠 부리를 가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이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죗값이었다. 제우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간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Hephaistos)를 시켜 진흙으로 만든 최초의 여성을 프로메테우스 동생,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뒤늦게 생각하는 자)에게 보냈다. 먼저 생각하는 자답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속셈을 깨닫고 동생에게 제우스가 주는 선물을 절대 받지 말 것을 당부했다. 뒤늦게 생각하는 자답게 동생은 미모에 반해 덥석 판도라를 아내로 삼았다. 상황이 계획대로 돌아가자 제우스는 헤르메스(Hermes)를 통해 상자 하나를 판도라에게 전했다. '절대 열지 마라'는 단서를 붙였다. 판도라는 안달이 났다. 상자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제우스 엄명 때문에 상자 개봉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편이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판도라는 상자를 열었다. 불행, 고통, 악, 질병, 전쟁 등 온갖 재앙이 빠져나왔다. 그동안 평온했던 세계 곳곳이 아비규환이었다.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닫았다. 그 재앙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지금도 세상을 떠돌고 있다.

희망은 미처 나오지 못했다. 재앙에서 벗어나려면 상자를 다시 열어 희망이 나오게 하면 된다. 판도라는 더 이상 열지 않는다. 제우스의 명령도 명령이지만 판도라는 상자에 희망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오히려 아직도 더 큰 재앙이 들어있다고 믿고 있다.

"판도라 상자는 인간에게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최악의 불행이고 재앙이다. 희망은 곧 재앙의 연장에 불과하다." 독일 실존철학자 니체(Nietzsche)의 말이다. 희망이 상자에서 나오면 인간의 재앙과 불행이 사라진다. 문제는 인간이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면 신의 권위나 권력을 여기서 끝이라는 점이다. 우선 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제사도 지내지 않고, 신탁을 받지 않을 것이다. 신의 영역을 침범해 맞짱 뜨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이러니 제우스가 인간에 희망을 주겠는가?

어떤 이유로든 인간은 희망을 기대만 할 뿐 가져서는 안 된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현재 고통과 불행을 참고 살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인간에게 확신시킨 것이 제우스의 최대 역할이다. 제우스는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제우스는 신의 신답지 않게 무척 잔인한 신이다.

희망은 절대 나오지 못한다. 동네 아이들이 좇는 무지개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인간은 억울하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인간은 아예 불조차 몰랐다. 벌 받으려면 프로메테우스만으로 충분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충분한 벌을 받고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 하지만 아무 죄 없는, 있다면 불을 가지고 문명을 발달시킨 죄 밖에 없는 인간은 아직도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공평하지 않는가? 조카는 봐주고 인간은 흑싸리 껍데기만큼도 알아주지 않았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상자에 있는 희망은 인간에게 고통과 불행을 영원히 참고 살라는 명령이다. 반면 상자에서 나온 희망은 신에게 재앙이다. 이래서 제우스는 상자에 희망을 넣지 않았다. 판도라 상자는 텅 비었다.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다. 신은 '노병사(老病死)'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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