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지난 시월의 마지막 주말 아침, 마치 어린아이들이 소풍가는 날처럼 작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이날 하얀 서리가 내린 60대 후반의 친구들은 중학교 총동문회가 주최하는 문화 탐방을 가기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공설운동장에 모였다. 까까머리 검은 교복에 모자를 썼던 동창생들을 보니 학창시절 은사님들과 친구들의 애환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그런데 어느 친구가 무겁게 입을 연다. "참, 그 친구가 여기 왔으면 참 좋았을 것을" 하면서 이미 고인이 된 친구이름을 부르며 지난날 아름다웠던 추억을 더듬기 시작했다.친구들은 "우리 모두 살아있을 때 서로 위하고 자주 만나고 즐겁게 지나자구, 사는 게 별거 있나요" 하며 친구들끼리 서로 서로 부둥켜안고 어깨를 두드린다.

버스는 전주 한옥마을을 향해 달린다. 창밖을 보니 병풍처럼 둘러친 자연이 형형색색이다. 가을이 빠르게 익어간다, 조금 있으면 동장군이 올 것이라 생각하니 세월의 빠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점심때가 되어 전주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경기전을 찾아 흘러간 역사를 되새겨본다. 이어 동학혁명기념관, 한옥마을 역사관, 부채문화관을 들러보니 어디하나 쉽게 이루어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변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고풍은 고풍대로 조상의 얼이 녹아져 있어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길가의 600년 은행나무가 세월을 말해 준다. 전동성당을 보며 우리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게 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행인들의 발걸음이 고풍의 맛을 더해만 간다.

어느 새 몸이 나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온다고 아침부터 설쳤으니 말이다. 우리는 잠시 쉬고 정겨운 대화도 나눌 겸 따뜻한 국물과 서민의 애주인 막걸리 한잔을 나누기 위해 길가의 주막을 찾았다. 대화를 나누며 학창시절로부터 시작하여 결혼시절, 직장과 사업, 자녀결혼, 직장은퇴와 할아버지의 이야기 등 애환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서로의 얼굴에 골곡이 심히 패였다. 왈, 이것을 인생 계급장이라고 하나 하며 서로 껄껄 웃는다.

해가 뉘엿 뉘엿 서산에 걸려있다. 이제는 왔던 곳으로 가야할 시간이 임박한 모양이다. 고향에 돌아오니 어느 덧 어둠이 짙게 깔렸다. 참으로 오늘 하루 감사하기 그지없다. 별탈없이 안전하게 문화 탐방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를 위해 준비한 집행부의 수고로움이 컸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함께 참여한 친구들, 동문들, 버스 기사님들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이제 초겨울에 와 있다. 올해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살아가면서 감사 못할 일이 없는데 왜 이리 불평을 많이 했는지 한없이 부끄럽다. 평생감사의 저자인 전광님은 감사는 계절도 시간도 없다. 감사는 어느 곳에서도 캐낼 수 있는 마음 따듯한 선물이다. 감사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크기이다. 자칫 감사와 행복의 이유들만 찾는 사이에 인생은 유수처럼 흘러간다. 그러므로 인생길의 매순간마다 감사거리를 찾아야 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감사하고 인생의 여정을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불현 듯 혹자가 말한 그럴수록 감사, 그것까지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하라고 한 그 말이 가슴을 저미어 오게 한다. 그렇다. 무릇 감사(thank)는 생각(think)으로부터 온 말이다. 그러니 생각만 바꾸면 감사하지 못할 것은 없다. 결국 생각이 차이가 감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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