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겸 대기자

서원대 미래창조관
서원대 미래창조관

[중부매일 박상준 칼럼] 열흘 전 사학진흥포럼이 열린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는 살벌한 문구를 담은 현수막이 걸렸다. 붉은색 굵은 글씨로 쓴 '한순간에 벼랑 끝'이라는 문구다. 대학 폐교라는 태풍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영향과 대책을 주제로 한 포럼이었지만 내 눈에는 벼랑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지방사립대의 현실을 직시한 문구로 보였다. 대학구조조정은 대세가 됐지만 더 심각한 것은 폐교대학 처리문제다. 이날 포럼엔 유은혜 교육부총리와 여야 3당 간사가 참석할 만큼 민감한 정책적 이슈였다. 몇 년 새 대학 폐교는 흔한 일이 됐다. 2000년 이후의 자진 폐교의 길을 걸은 대학은 모두 3곳이다. 교육부의 폐교 명령을 받아 퇴출된 학교는 11개 대학에 달한다. 올 3월에도 28년 전통의 전북 서남대 남원캠퍼스가 강제폐교 절차를 밟았다. 설립자의 교비횡령과 회계부정이 퇴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진학률 하락,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취업난등으로 대학사회가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상태로 향후 7년도 안돼 학생이 모자라 어중간한 대학 80곳 정도는 문을 닫아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퇴출'보다 '폐교대학' 대책을 세워야할 시점에 와있다.

수천, 수만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소속된 대학을 이끄는 입장이라면 대학의 생존에 깊이 고민해야 한다. 대학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는 모든 대학의 화두(話頭)다. 여건이 불리한 지방사립대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여전히 구시대적인 관행과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학이 있다. 청주대와 함께 충북의 양대 사학인 서원대학교가 그렇다. 이 대학 손석민 총장은 지금 교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시설투자를 하기는 커 녕 총장 개인이 부담해야 할 관사 관리비 4천620여만 원을 법인과 교비 회계에 떠넘겼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이 맑을 리 없다. 일부 평생교육대학 교수들은 보조금 부정수급 의혹으로 입건됐다. 교수와 학생들이 짜고 교과과정을 이수할 것처럼 수강 신청을 한 후 실제 교육은 받지 않고 지급된 보조금만 가로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냄비속 개구리 우화가 연상된다.

서원대가 지난 2012년 우여곡절 끝에 새 주인을 맞았을 때 만해도 지역사회의 기대가 컸다. 손 총장은 취임사에서 "학교 경영은 전적으로 돈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뚜렷한 육영사업의 의지와 철학 그리고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 대학 구성원이나 동문들은 가슴이 뭉클했을 것이다. 이 대학 설립자인 고(故) 강기용 박사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최빈국 소리를 들으며 가장 절망스런 시기인 1950년대 초반 인재양성을 위해 서원학원(옛 운호학원)을 설립할 때 강 박사는 부인 임관익씨와 함께 직접 벽돌을 등에 지고 모충동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교사(校舍)를 지었다. 1967년에 설립된 서원대(당시 청주여자초급대학)도 그중 하나였다. 교육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서원학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서원학원은 2대를 넘기지 못했다. 숭고한 교육이념은 사라지고 학원은 부패와 혼란에 빠졌다. 학교구성원들에겐 고난의 시기였다. 이럴 때 학원을 인수한 손 총장은 육영사업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돈'이 아닌 '철학'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장본인과 일부 교수들은 지금 돈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서원대는 비싼 사립대 등록금을 부담하며 자녀를 가르치고 있는 학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봤는지 궁금하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대학이 문을 닫으면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겠지만 대학구조개혁은 정부의 방침을 떠나 시대적인 요청이다. 5년 뒤엔 고교 졸업자 100%를 대학에 밀어 넣어도 못 채울 만큼 학령인구 감소추세가 빠르다. 학생 유치를 위해 대학끼리 무한경쟁을 벌이면 가장 타격을 입는 대학은 경쟁력이 없는 전문대와 지방사립대다. 총장이 의지와 철학, 열정만으로 대학의 위기를 돌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손 총장의 취임사는 영혼 없는 말로 채워졌다. 대학이 변하지 못하면 벼랑끝에 서는 것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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