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내 삶, 타인 생명 돌보며 살고싶습니다"

충주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을 운영하고 있는 신두환 대표가 앰뷸런스에 타고 있다.<br>
충주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을 운영하고 있는 신두환 대표가 앰뷸런스에 타고 있다.
충주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을 운영하고 있는 신두환 대표가 앰뷸런스에 타고 있다.
충주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을 운영하고 있는 신두환 대표가 앰뷸런스에 타고 있다.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매일 같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관성처럼 지나치는 삶을 살 때가 많다.

먹고 살기 위해 바쁘게 뛰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남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더욱 힘들다.

죽음의 고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아 자신의 삶을 덤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돌보면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인물이 있다.

충주에서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을 운영하고 있는 신두환(61) 대표는 1년 365일을 항상 긴장된 시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전화기는 24시간 켜져 있고 전화벨이 울리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습관적으로 앰뷸런스로 달려간다.


신 대표가 하고 있는 일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분·초가 시급한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지난 2002년부터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신 대표는 충주의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응급환자들을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다.

또 각종 사건과 사고현장에 출동해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으며 충주지역에서 발생하는 변사사건의 사망자 처리를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이 출동해 처리하는 변사사건만 매월 10건 정도에 이른다.

이 일을 시작한 것이 17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수습한 변사자 수만도 가히 짐작할만 하다.

하는 일이 이렇다 보니 안타까운 일도 무수하게 겪는다.

지난해 12월 충주에서 재산문제로 다툼을 하다 40대 아들이 자신의 노부모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 현장에도 신 대표가 직접 출동했다.

패륜범죄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그는 돈에 무너진 가족관계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수일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면 생활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많이 발생해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충주시 중앙탑면이 고향인 그는 여느 친구들처럼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평범하게 보냈다.

그러나 군에 입대한 뒤 자신의 인생을 뒤바꿔 놓는 엄청난 경험을 겪게된다.

1978년 5월 25사단에 입대해 군생활을 하던 그는 이듬해 8월 경기도 연천에서 야간훈련을 하던 중 머리 앞부분이 함몰되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서울에 있는 57후송병원에서 1차 수술을 한 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상태가 좋지않아 경남 진해에 있는 통합병원으로 옮겨져 2차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맡았던 의료진도 그의 상태가 워낙 위중하다 보니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면회를 온 그의 어머니와 형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을 당부했다.

가족들까지 모두 그의 생존을 포기했지만 그는 1년여 동안 병원신세를 진 끝에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한 채 퇴원했다.

그는 '국가유공자'가 돼 군을 제대했지만 성치않은 몸을 비관해 처음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에서 타락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다시 정신을 차리고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개포동에서 노점상을 시작했다.

그는 한겨울 추위 속에서 얼어붙은 생선을 손질해 팔면서 손에 동상이 생길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이후에도 직업소개소에서 총무를 맡는 등 그저 입에 풀칠하기 위해 뚜렷한 직업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중 지난 2002년 응급구조단장을 맡고 있던 김덕중씨의 권유로 응급환자이송단 업무를 맡게된다.

분·초를 다퉈야 하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신 대표는 이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은 물론, 남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갖게됐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긴 자신의 삶을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의 생명을 구하고 망자들이 편안하게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게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라고 스스로 여긴다.

그래서 그는 응급환자 뿐 아니라 변사자들을 다루는데도 조금의 소홀함 없이 최선을 다한다.

신 대표는 응급환자이송단 일 외에도 충주시로부터 위탁받아 '충주시부랑인 임시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숙자 등을 데려와 재운 뒤 시와 협조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받도록 하거나 꽃동네 등의 시설로 인계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무엇보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 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이런저런 연유로 노숙자 신세가 된 외국인노동자들을 볼 때 정말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노숙인이 된 아주머니를 재운 뒤 경기도 용인의 연고지로 보내기 위해 충주터미널에서 자비로 차표를 끊어주고 용돈까지 쥐어주는 등 불쌍한 노숙인들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턴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신 대표는 응급환자 이송과 부랑아를 돌보는 일 외에도 '중앙특수여객'이라는 상호로 직접 영구차를 운행한다.

운구가 있는 날이면 망인들을 장지까지 옮겨야 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기상해야 한다.

1년 365일 남을 위해 하루도 쉬지 못하다 보니 그 흔한 가족여행 한 번 못가봤다.

그는 남의 생명을 돌보며 살면서도 '봉사'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남을 위한 일이 곧 나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올해 충주에서 열린 세계소방관경기대회를 비롯해 충주에서 열린 전국체전과 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등 충주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는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충북도와 충주시로부터 감사패와 공로패도 여러차례 받았다.

그는 (사)대한종합무술격투기협회 충주시협회장도 맡아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열릴 때면 격투기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제천소방서에 근무하면서 '소방관 파이터'로 유명한 격투기 선수 신동국 소방관이 신 대표의 친조카다.

신 대표는 긴장되고 바쁘게 보내는 시간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분재를 가꾸는 취미를 갖고 있다.

소나무와 모과나무, 느티나무, 철쭉 등 작은 화분 안에서 나무의 축소된 형태를 만들고 가꾸면서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재에 빠져들면서 충주시 풍동에 마련한 분재온실에 많을 때는 수백 점을 소유하기도 했다.

지금은 워낙 바쁘다 보니 제대로 관리할 시간이 없어 100여 점으로 줄였다.

최근에는 분재에 비해 손이 덜 가는 조경수를 가꾸는 일에도 심취해 있다.

신 대표의 가족들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모태신앙을 갖고 있는 부인 남경은 씨와 신 대표는 교회에서 부부 권사를 맡고있고 사위도 목사다.

그는 교회에 갈 때마다 자신이 수습한 망인들이 천국에 가 영생하도록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신 대표는 "생사의 현장에서 안타까운 일도 많이 겪지만 이 일은 하나님이 내게 부여한 임무라고 생각한다"며 "어차피 나의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인 만큼, 앞으로도 남을 돌보면서 은혜를 갚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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