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사람이 대안이다
지방소멸, 사람이 대안이다
  • 중부매일
  • 승인 2018.11.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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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청주 우민아트센터(관장 이용미)가 개관 4주년을 맞아 마련한 황인기작가의 ‘여행 후, 여행 전(A journey after, a journey before)’ 2015 기획초대전이 10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13일까지 계속된다. 개막식에 참석한 이시종 충북지사를 비롯한 내빈들이 황인기작가의 작품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부터 황인기 작가, 장덕수 우민재단 이사장(중부매일 회장), 이언구 충북도의회 의장, 이시종 충북지사, 윤철규 충북경찰청장. /김용수
청주 우민아트센터(관장 이용미)가 개관 4주년을 맞아 마련한 황인기작가의 ‘여행 후, 여행 전(A journey after, a journey before)’ 2015 기획초대전이 10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13일까지 계속된다. 개막식에 참석한 이시종 충북지사를 비롯한 내빈들이 황인기작가의 작품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부터 황인기 작가, 장덕수 우민재단 이사장(중부매일 회장), 이언구 충북도의회 의장, 이시종 충북지사, 윤철규 충북경찰청장. /김용수

그 어떤 만남도 우연은 없다. 스쳐가는 풍경 속에도 운명이 깃들어 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매 순간 앙가슴 뛴다. 만남과 만남 속에 내 삶의 이야기가 있고 꿈이 있으며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남은 소중하다. 애틋하다. 만남을 통해 상처가 생길지라도 헛된 것은 없다.나는 최근에 가슴 뛰는 만남을 경험했다. SNS라는 불모의 땅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소중한 인연을 맺으며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괴산군 청안면 백봉리 산기슭에 고인이 된 황창배 화가의 작업장이 있다. 이화여대 교수를 그만두고 창작활동에만 전념하겠다며 이곳으로 내려왔다. 질마재고개가 너무 아름다웠다. 백봉리 산기슭은 숲과 계곡과 생명의 보고였다. 그래서 작업장을 만들고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했다.

작가는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화폭에 담았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유쾌하게 표현했으며 심미적으로 탐구해 온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국내 첫 방북 작가였으며 천재 미술가로도 알려졌다. 불행하게도 그는 백봉리에서 10여 년간 작품활동을 하다가 2001년 54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작고했다. 백봉리에는 고인의 작업실이 그대로 보존됐다. 그 터만 해도 7천여 평에 달한다. 미망인 이재온씨를 만났다. 그곳에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을 만들고 싶어한다. 지자체가 뜻이 있다면 기꺼이 작품과 대지를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옥천군 동이면 산자락에는 원로화가 황인기 작가께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2천여 평의 숲속에 수장고, 창작실, 갤러리, 정원 등을 꾸몄다. 벌써 20년이 되었다. 서울대학교와 미국 프랫인스티튜트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난해에는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베니스비엔날레, 바젤아트페어, 광주비엔날레, 런던 사치갤러리 등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디지털 산수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왔다. 그의 손에는 붓과 물감 대신 못과 레고와 인조 수정 등의 의외의 것들로 가득 찼다. 못을 박아가며, 레고를 맞춰가며, 인조 수정을 붙여가며, 실리콘으로 고정시키며 하나 하나 작품을 완성시켰다. 컴퓨터로 밑그림을 그린 뒤 수십만 개의 재료들을 조합해 만든 작품은 몽유도원도를 비롯한 한국의 자연 풍경이다.

황인기 작가도 요즘 고민이 깊다. 창작활동이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하면 되겠지만 창작의 산실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옥천으로 낙향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니 이왕이면 지역발전을 위해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100호 이상의 대작이다. 지역의 주민들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재능기부로 하고 싶다. 그래야 지역에 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지역에 창작의 불꽃을 피우는 예술인들이 참으로 많다. 얼마 전에는 송계 박영대 선생의 작품이 천안에 있는 백석대학교에 기증되고 송계미술관을 개관했다는 소식에 지역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지역의 사람이 지역에서 홀대받는 슬픈 자화상에 쓸쓸함이 밀려온다.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지역을 살릴 수 있으며 지역의 희망이 될 수 있다.

프랑스 파리 인근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 인구 300명에 불과한 마을이지만 프랑스 인상파의 창시자인 화가 모네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곳곳을 다니며 자연을 화폭에 담았는데 말년에 지베르니의 농장을 구입해 연못이 있는 정원을 꾸미고 여생을 보냈다.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에세이스트

말년에 백내장으로 고생했지만 마지막까지 연못과 정원의 시시각각 변화는 풍경을 탐구하며 그림을 그렸다. 폐암으로 사망 후 지베르니에 있는 성당에 묻혔다. 그의 아들은 집을 프랑스 예술아카데미에 기증했고, 현재는 모네기념관이 되어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아무리 작은 무명 마을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지금 우리 곁에 쓸쓸한 마을이 많다. 지방소멸의 진원지다. 지역에 내로라하는 문화기획자나 예술인이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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