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낙엽은 이리저리 뒹굴고 햇볕은 가녀리게 빛난다. 사람들은 낙엽에 채이며 어디론지 바삐 걸어간다. 이때 어디선가 그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나를 보더니 흠칫 하고는 저쪽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요즘 거리를 산책할 때 흔히 보는 광경이다. 강아지는 목줄을 한 채 꼼짝없이 가지만 고양이는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 길고양이라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유랑한다. 어떤 놈은 잘 먹어서 통통한가 하면, 어떤 놈은 못 먹어서 빼빼 말라 있다. 철저히 혼자다. 무리지어 다니는 법이 없다. 무소의 뿔처럼 목표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간다.

나는 전생에 어찌된 것인지 고양이와 인연이 많다. 고양이에 관하여 글을 쓰는 것이 두 번째다. 지난 해 '그르렁 야옹이'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만큼 고양이와 이제는 뗄 레야 뗄 수가 없는 인연이 되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캣맘으로 자처하면서 동네 고양이들을 챙기고 있다. 어쩌다 부부가 모두 고양이에게 빠졌다. 고양이가 도대체 뭐 길래…….

내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머무는 관사에 고양이가 찾아들었다. 고양이와 정이 든 나로서는 당연히 집사 노릇을 자처했다. 마당 툇마루 밑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는, 아침저녁으로 살피며 먹이를 주었다. 어찌 된 것이 한 놈만 오더니 소문을 냈는지 이제는 몇 놈씩 왔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영락없이 먹이가 동이 났다. 그것도 큰 그릇에 가득 주었는데……. 어허, 이를 어찌 할 거나.

어느 날 보니 가관도 아니다. 흰 바탕에 검은 색 반점이 있는 고양이 한 놈이 자리를 틀었다. 마련해 준 공간에서 아예 잠을 잤나보다. 나를 보더니 기겁을 하고 달아난다. 잠시 멈추고는 뒤를 보며 나를 흠칫흠칫 쳐다본다. 이 놈 봐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을 빙빙 돈다. 이제는 정이 들었다는 뜻인가? 난 이 놈의 이름을'나옹이'라고 져 주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먹이를 주지 않으면 내 곁으로 다가 와서 시위를 했다. 야옹, 야옹 하면서 졸졸 따라 다녔다.

올해 유월쯤이었다. 이놈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디선가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난 이때까지도 이놈이 새끼를 낳았는지 몰랐다. 가끔 며칠씩 집에 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먹이만 먹고 바로 가버리는 때도 있었기 때문에 새끼를 가졌는지 몰랐다. 풀로 우거진 수로 밑에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옹기옹기 모여 있었다. 아뿔싸, 이럴 수가. 벌써 많이 커 있었다. 모성 본능인지 아기 곁으로 다가가려 하면 하악 질을 해댔다. 간신히 먹이로 유인하면서 툇마루 밑으로 오게 하여 결국 잘 자랐다.

최근의 일이다. 캣맘인 아내는 일을 내고야 말았다. 집에서 직접 키우던 고양이 네 마리를 딸과 아들이 데려간 이후, 난 한동안 고양이 없는 집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던 터였다. 웬걸, 아내가 거리에서 배회하는 고양이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종이'러시안 블루'란다. 별로 보지 못하던 짙은 회색빛 고양이다. 이놈은 보자마다 나에게 척 안겼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면서 결국 하룻밤을 자고야 말았다. 이 하룻밤이 만리장성이 될 줄이야. 이제는 버젓이 한 가족이 되어 아파트 거실을 휘젓고 다닌다.

난 아내에게 이 러시안 블루 하나만 키우자고 했다. 그러겠다고 아내도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자기 직장 주차장에서 아주 어린 고양이를 구해 놓았으니 데려가란다. 아기 고양이가 불쌍하여 차마 그냥 둘 수가 없단다. 아내는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평택까지 올라가 그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서는 나에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보니, 생후 몇 주일도 안 되는 아주 어린 고양이었다. 아마도 어미를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검은 색이 많은 놈이라서 이름을'초코'라고 지었다.

사람이 살다보니 별 일을 다 겪는다. 고양이와 무슨 인연이 있다고 고양이만 보면 눈이 가고 데려오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내가 EBS 교육방송에'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프로가 있다고 하여 다시 보기로 시청했다. 수십 번에 걸쳐 방송되었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참 많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바야흐로 반려 동물의 시대다. 그 관련 사업도 수 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생명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절대 평등하다. 고양이는 독립적이면서도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야생의 본능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느끼면 결코 발톱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역을 굳게 지킨다. 어찌 보면 신사적이다.

거리를 배회하던 블루, 아기 고양이 초코! 어찌할 수 없는 인연이다. 한 생명으로 살면서 희로애락을 나눌 수밖에.

 

최시선 수필가<br>
최시선 수필가

약력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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