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상수 청주 동부소방서장

옥천소방서는 22일 옥천읍 일원에서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을 실시했다. / 옥천소방서<br>
옥천소방서는 22일 옥천읍 일원에서 소방차 길터주기 훈련을 실시했다. / 옥천소방서

겨울의 문턱이다. 올 가을 소방서 한 켠의 감나무에 주먹만 한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한 무더기 감을 따내고 꼭대기에 열린 대여섯 개 감은 남겨두었다. 우리네 조상들은 주린 배를 안고 찾아올 날짐승을 생각하며 그렇게 열매를 몇 개씩이나 남겨두었다고 하지 않았나. 내 집에 찾아올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 우리도 그 고운 마음을 이어받아 내 집 앞 한자리를 비워놓아 보자. 언젠가 긴급한 상황에 내 집 앞에 찾아올 그 소방차를 위하여.

'골든타임'이라는 말은 이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심정지와 호흡곤란 등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4분 이내에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4분을 넘기고 나면 소생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화재 발생 시에도 골든타임을 놓치면 연소 확산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 화재진압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골든타임을 지키는 것은 소방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소방서에서는 출동 소요 시간을 단 몇 초라도 줄이기 위해 소방서 인근 교통신호를 통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소방차량이 출동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곳은 바로 도로다. 2~3km의 가까운 거리라도 시내를 통과하는 경로라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 현장 인근에 도착하더라도 도로에 주정차 된 차량 사이를 헤쳐 나가야 하는 등 몇 단계의 난관이 남아있다. 주택이 밀집된 지역의 화재현장에서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종종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멀리서부터 호스를 끌어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골든타임 확보는 소방의 힘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다. 시민들의 도움이 이런 과업을 쉽게 완성 시킬 수 있다.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이나 소방차 전용구역 확보는 바로 시민들의 힘을 모으기 위한 작업이다. 도로 위에서 사이렌의 울림을 만난 시민들은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기적에 참여할 수 있다. 길 터주기의 기적에 아직도 참여하지 못했다면 다음을 숙지하고 대비하자. ▶교차로에서는 진입을 멈추고 일시정지하며 ▶도로에서 오른쪽 가장자리로 양보 운전을 해 출동하는 소방차· 구급차의 진로 확보 ▶횡단보도 보행 중에는 소방차량이 통과할 때까지 횡단보도에 잠시 멈추면 된다.

신상수 청주 동부소방서장.

또한 ▶소방차 전용구역이나 주택이 밀집된 좁은 골목에 주·정차하지 않고 ▶골목에 주차할 경우에는 양면 주차를 피하며 ▶좌판 등 소방차 주행에 방해가 되는 적재물은 도로에 쌓아두지 말고 소방차 전용구역을 확보해두자. 이러한 작은 실천이 지켜진다면 소방차량은 무사히 현장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참여를 통해 지켜낸 골든타임은 생명을 구하고, 화마(火魔)에 맞서 무사히 승리할 힘을 소방대원들에게 준다. 비록 길을 양보하느라 귀갓길이 조금 늦어지고, 집 앞 골목에 주차하지 못해 걸어야 할 거리가 늘겠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언젠가 내 집 앞에 한걸음 더 빠르게 찾아올 그 소방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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