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 오은

괄호를 열고
비밀을 적고
괄호를 닫고

비밀은 잠재적으로 봉인되었다

정작 우리는
괄호 밖에 서 있었다

비밀스럽지만 비밀하지는 않은

들키기는 싫지만
인정은 받고 싶은

괄호는 안을 껴안고
괄호는 바깥에 등을 돌리고
어떻게든 맞붙어 원이 되려고 하고

괄호 안에 있는 것들은
숨이 턱턱 막히고

괄호 밖 그림자는
서성이다가
꿈틀대다가
출렁대다가

꾸역꾸역 괄호 안으로 스며들고

우리는 스스로 비밀이 되었지만
서로를 숨겨 주기에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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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시인.
최호일 시인.

'우리'라는 단어를 기호로 표시하면 괄호가 된다. 우리는 모두 조그만 괄호로, 커다란 괄호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사이에는 일정한 비밀이 봉인되어 있다. 괄호는 아가리를 벌리면 한없이 커지기도 하는데, 그 안에 우주가 통째로 들어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아무리 큰 괄호라 해도 "우리는 스스로 비밀이 되었지만/ 서로를 숨겨 주기에는/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숨이 막힌다. 그것이 우리끼리 싸우는 이유다. 누구나 이 시를 읽으면 복잡한 사회학 서적을 열 권 읽고 난 복잡한 얼굴이 될 것이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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